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관순 열사,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의 노래"

성지순례/한국 성지(개신교)

by baesungsoo 2019. 2. 26. 10:04

본문

https://youtu.be/ITDlWk_8QQY

  

<여옥사 8호 감방의 노래>  -안예은 노래-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가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8호 감방’의 노래 가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진희 기자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221573082173)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221573082173)

1919..2.2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8호감방 앞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8호 감방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료들이 ‘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을 개사해 100년 전 불렀던 노래가 새롭게

탄생했다. 박소영 기자[저작권 한국일보]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221573082173)

저작권 한국일보]서대문형무소 여옥사_신동준 기자/2018-12-31(한국일보)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기들이 부른 옥중 창가 8호 감방의 노래'100년만에 새롭게 탄생했다. 31운동, 임시정부 설립 100년을 맞아 진행하는 한국일보의 연중기획 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2일 오후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작곡한 ‘8호 감방의 노래(Women’s march)’가 음원으로 제작돼 공개됐다.

 

‘8호 감방의 노래100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는 극적이다. 지난달 1191931운동을 주동한 죄목으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 외 6명이 감옥에서 만들어 부른 노래 두 곡의 가사가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관련 기사보기)두 곡의 가사를 공개한 심명철(본명 심영식1896~1983) 지사의 아들 문수일(81)씨는 당시 원래 불리던 곡을 개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곡의 제목은 선죽교 피다리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권애라(1897~1973) 지사가 개사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문씨는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보도 후 당시 개성의 31운동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던 허내삼(1888~1964) 지사의 막내아들인 허상희(80)씨 측에서 한국일보에 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을 알고 있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허씨는 개성지방에서 널리 불렸던 선죽교 피다리의 가락을 기억해 생생히 재현했다. 옥중에서 붙여진 가사와 원곡의 멜로디가 드러남에 따라 실제로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기들이 100년 전 서대문형무소에서 함께 부르며 독립의지를 북돋웠던 노래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100년 전 가사와 멜로디를 바탕으로 8호 감방의 노래를 되살린 가수는 싱어송라이터 안예은(27)이다. 안씨는 SBS ‘K팝스타5’ 출신으로, 경연 당시에도 자작곡들로 무대를 꾸몄다. 또한 안씨는 오디션 프로그램방송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으며,여성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위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사회문제에 대한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8호 감방의 노래에서 그는 현악기를 주로 활용하며 피아노 선율과 함께 서정성과 결연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애초 두 곡으로 나뉘었던 가사를 한 곡으로 합쳐 연결성을 두드러지게 했다. ‘대한이 살았다/대한이 살았다라는 31운동의 결기를 보여주는 가사는 노래의 후렴구로 배치했다. 안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조명된다는 취지가 좋고, 이들이 실제로 불렀던 가사에 곡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영광스러웠다며 프로젝트 참여 취지를 밝혔다.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여옥사(女獄舍) 앞에서 만난 안씨는 “‘피눈물로 기도했네라는 가사를 본 순간,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뭉클한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냥 기도한다는 것도 아니고, 피눈물로 기도한다는 가사를 보며 전투적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결연한 인상을 받았어요. 요새로 치면 시위 트럭에서 진두지휘하면서 부르는 노래처럼요.”

 

안씨는 하지만 결연한 가사와 달리 원곡인 선죽교 피다리의 멜로디는 밝고 희망찬 느낌이 더 컸다개사한 가사와 원곡 음의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원곡에 그대로 가사를 얹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역사의 피해자로서의 모습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자는 취지를 더해 ‘8호 감방의 노래는 새로운 노래로 재창조하게 됐다.

 

안씨는 ‘8호 감방의 노래의 절정 후렴부인 대한이 살았다부분의 합창을 인상적인 지점으로 꼽았다. “코러스를 함께 해준 친구 3명 모두 20대 여성인데, 100년 전10, 20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부른 노래를 현시대의 여성들이 함께 부른다는 의미에서 무척 뜻있는 작업이었어요.마치 일제강점기시대에 나도 같이 만세 운동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만세 운동을 하고 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와 감옥동기들이 감옥에서까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어요.곡 작업을 하면서 이들이 힘든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밝게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 노래를 통해 그 시대의 여성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는 것,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노순경 지사도 감옥에서까지 뜻을 꺾지 않고 함께했다는 점을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호 감방의 노래음원은 22일 오후 각 음원 사이트에 공개됐으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에서 제작된 라이브 영상은 같은 날 한국일보 영상채널 프란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됐다.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221573082173)





<유관순 열사 학생시절 사진 공개>

(출처-https://news.v.daum.net/v/20190521120602358?f=p)


21일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 2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2019.5.21.

이화여대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역사관에서 창립 133주년을 기념해 유 열사(1902~1920)의 이화학당 시절 미공개 사진 2점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화여대는 유 열사가 이화학당 보통과와 고등과에 다닐 무렵 사진으로 추정되며,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들이 사진 촬영 시기, 인물 생김새 등으로 봤을 때 유 열사가 맞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3·1 운동 100주년 기념 이화독립운동가들 특별전 준비 중, 1886년 이화학당 창설시기부터 1960년까지 학교 관련 사진이 정리된 이화역사관 소장 사진첩에서 발견됐다. 유 열사는 1915~1916년께 이화학당에 편입해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했고 그해 4월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해 1919년까지 재학했다.


(출처-https://news.v.daum.net/v/20190521120602358?f=p)

첫 번째 사진은 유 열사가 이화여대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에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정혜중 이화역사관 관장은 사진첩 속 사진들의 연대를 감안할 때 유 열사가 이화여대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인 1915~1916년에 찍힌 것으로 보인다촬영 당시 열사의 나이는 13살 정도로, 정확한 연도는 특정할 수 없지만 아마 현재까지 알려진 유 열사의 사진 중 가장 앳된 모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https://news.v.daum.net/v/20190521120602358?f=p)


가장 가운데가 유관순 열사,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복희 열사.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 재학시절로 추정. 사진 이화여대 제공.

.

두 번째 사진은 유 열사가 이화학당 고등과에 재학하던 1918년 무렵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촬영 당시 유 열사의 나이는 15~16세로 알려졌다. 정 관장은 유 열사의 고등과 선배인 독립운동가 김복희 열사가 사진에 등장하는데, 김 열사는 1919년 고등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이 사진은 김 열사의 졸업 전인 1918년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화학당은 창립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 흰 옷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촬영된 날은 531일 이화학당 창립기념일이나 다른 특별한 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이어 이 사진들은 주체적인 여성이자 독립운동에 헌신한 유 열사를 기억하는 사진이자 당시 학창시절을 볼 수 있는 사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도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사진은 10대 소녀인 유 열사의 모습이라며 옥중에서 항거한 열사의 모습을 넘어 동기와 함께 생활하고 학습하던 꿈 많은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이화역사관에서는 3.1운동 100주년과 이화여대 창립 133주년을 맞이해 <이화의 독립운동가들> 전시를 개최하며, 이번에 발견된 유 열사의 하진 원본을 오늘부터 이달 24일까지 4일 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