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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Stonehenge)

타종교신전/기타(영국,태양신전 등)

by baesungsoo 2013. 4. 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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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출처-http://cafe.naver.com/firenze/1959139)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130km 떨어진 잉글랜드 위트셔주 솔즈베리 평원(Salisbury Plain)에서는 스톤헨지(Stone Henge)라 불리는 거대한 석조물이 있다. 넓은 들판에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 2개의 돌 위에 1개의 돌이 수평으로 얹혀져 아치 모양을 이루고 있는 스톤헨지는 높이 7m, 무게 45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쪽에는 동심원 형태의 고리가 있으며 안쪽에는 말발굽형태의 돌이 세워져 있다. 스톤헨지에 쓰인 돌은 크게 2가지로 나뉘어지는데 바깥쪽 원형와 삼석탑(Trilithon, 곧게 선 두 돌 위에 한 개의 돌을 얹은 탑)은 사슨석(Sarsen Stone)이라는 바위로 만들어졌으며, 푸른색의 작은 원형와 말발굽 모양의 푸른색 입석은 블루스톤(Blue Stone)이라는 바위로 만들어졌다. 사슨석은 스톤헨지에서 북쪽으로 약 30km쯤 떨어진 말버러 다운즈의 암석지대에서 운반되었다. 평균 4톤의 블루스톤은 스톤헨지에서 북서쪽으로 220km 떨어진 프리셀리 산맥에서 육지, 바다, 강을 차례로 지나면서 운반하였다. 스톤헨지를 연구한 결과, 기원전 3100년 이전에는 단지 언덕 하부 중심에 지름 20m에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중앙에 지름 5m, 높이 0.8m의 작은 언덕이 먼저 축조되고, 다시 이 작은 언덕을 두 차례에 걸쳐 덮어 쌓아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기원전 2100년경에는 이 돌들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블루스톤을 그 다음에 사슨석을 세웠다. 그러나 이것을 다 세운 후에 다시 이것을 분해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왜 이것을 완성한 후 다시 분해하였는지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기 때문에 밝혀낼 수가 없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큰 돌을 운반하여 세울 수 있었을까? 바위를 대강 잘라서 통나무 썰매에 싣고 밧줄로 끌면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사슨석의 평균 무게가 30톤인 것으로 보아 약 1000여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스톤헨지는 여러 세대를 거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구축물들은 건조시기가 각각 다른데 바깥 도랑과 제방 그리고 힐스톤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BC 1848±275년에 건조되었고, 입석류는 BC 1700∼BC 1600년, 중앙의 석조물은 BC 1500∼BC 1400년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톤헨지까지 운반된 바위는 정밀하고도 독창적인 방법으로 말발굽 모양이나 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특히 바깥쪽 원형 열석과 상인방 돌은 일직선으로 잘라 완성된 모양이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룬다. 또한 바깥쪽 원형 열석과 삼석탑에는 돌기둥과 상인방 돌을 확실히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도 마련되었다. 돌기둥 위쪽에 약간 튀어나온 부분을 만들고 여기에 맞도록 상인방 돌에 지름 20cm정도의 구멍을 뚫어 2개의 돌을 정확히 맞춘 것이다. 약 30개의 사슨석과 상인방을 원형으로 세웠는데 오늘날은 17개만이 남아 있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과학자들이 지난 수십년간 미국에 보관되어온 샘플 덕분에 영국 윌트셔에 위치한 스톤헨지 거석이 어디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었다.

2020.7.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연구진은 지구화학실험 결과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52종의 연회색 사암 중 50개가 윌트셔의 말보로 다운스 가장자리에 위치한 웨스트우즈에서 약 25km 떨어진 장소와 공통의 기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스톤헨지의 거석은 기원전 2500년경에 세워졌다. 가장 큰 것은 높이가 9.1미터이며, 가장 무거운 것은 약 30톤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브라이튼대학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내쉬는 "그 돌들이 어떻게 현장으로 옮겨졌는지는 여전히 추측 대상"이라며 "돌의 크기로 보아 돌돌을 끌고 가거나 롤러를 이용해 스톤헨지로 옮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아직 정확한 경로를 모르지만 적어도 이제 스톤헨지의 출발점과 끝점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스톤헨지의 더 작은 청석(블루스톤)은 앞서 250km 떨어진 웨일스의 펨브로케셔에서 추적됐지만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었다. 1950년대 말 균열된 거석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속막대를 삽입하는 작업 중에 추출된 암석샘플이 이번 연구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이 샘플은 작업에 시추 작업에 참여했던 로버트 필립스라는 사람에게 기념품으로 증정됐다. 그는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영국 당국의 허락을 받고 이 샘플을 가지고 갔다. 2018년에는 연구를 위해 영국에 반환했고 지난해 사망했다. 내쉬는 "우리가 알아낸 것이 스톤헨지 건설에 관련된 엄청난 노력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과학자들이 지난 수십년간 미국에 보관되어온 샘플 덕분에 영국 윌트셔에 위치한 스톤헨지 거석이 어디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었다.

(출처-news.v.daum.net/v/20200730040557213)

 

 

천체 관측소로서의 스톤헨지            (

출처-http://cafe.naver.com/firenze/1959139)

 

스톤헨지의 용도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19세기에 발전한 것으로 이 스톤헨지가 일종의 천체 관측소였다는 것이다.  스톤헨지의 원형 평면은 4개의 정삼각형을 중심 주위로 돌려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 결과 스톤헨지 안에는 여러 종류의 12각형과 6각형이 내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스톤헨지의 원형 평면 안에는 3, 4, 6, 12라는 네 개의 숫자가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질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고대 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원과 정삼각형, 그리고 정사각형은 가장 완벽한 기하 형태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대인들은 원을 천상의 신인 코엘러스(Coelus)가 사용하던 상형 문자라고 믿었다. 12라는 숫자는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설명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이다. 또한 6이라는 숫자는 약수들의 합과 자신이 같아지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완전수(perfect number)라고 믿는 숫자였다. 이러한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스톤헨지의 내부 구성은 천체의 운행과 변화를 읽어내는 고도로 발전한 컴퓨터였다. 예를 들면 스톤헨지 내에 있는 여러 개의 삼각형들 가운데 어떤 한 삼각형에 태양의 위치가 일치했을 때 이들은 파종을 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미 태양의 궤적을 읽어내고 자연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추적해내는 계산판을 땅 위에 축조해 놓았다. 영국의 고대인들은 네 개의 정삼각형을 평면 위에서 돌려 육각형과 십이각형으로 구성되는 동심원 구도를 만들어 태양의 궤적을 읽어내고 자연의 길흉화복을 점쳤다.스톤헨지는 절기의 변화를 알려주는 달력이자, 천지의 기운을 읽어내는 천체 관측소였으며 고도의 복잡한 계산을 행하는 컴퓨터였다. 스톤헨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종모양의 독특한 토기를 만들어내던 청동기인들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게 운반해온 푸른돌로 백년간 건축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푸른돌보다 10배나 무겁고 높이는 7m나 되는 사암덩어리로 다시 건축을 시작했다.화강암보다 훨씬 단단한 사암포석을 쪼고 다듬는 일은 고도의 기술과 노력을 요구했다. 이 돌들은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가운데 지랫대 등을 이용해 세워졌고. 다시 기둥위로 올려졌다. 이들은 왜 이 스톤헨지를 이룩한 것일까? 사실 그 이유는 아직도 알려진바 없다.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건축물들을 보면 온갖 추측이 나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이 곳은 너무도 신비하며 장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해서 건축가들에 대한 전설같은 추측으로는 중세 시대 아더왕과 마법사 머린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라든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고대 아틸란티스인들이 세운 것이라든가 하는 추측들이다. 한편으론 화려한 무덤이 이 스톤헨지 주변에 많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죽은 전사를 위한 지하세계의 문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추측되기도 한다.여기서 UFO가 자주 출연한다는 얘기들이 전해지는 것도 이 지역 모두가 거석문화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고대인의 태양 신전           (

출처-http://cafe.naver.com/firenze/1959139)

                   

스톤헨지가 고대의 태양신앙과 결부되고, 하지(夏至)의 태양이 힐스톤 위에서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추었던 시기가 천문학적으로 BC 1840±200년이라고 계산됨으로써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의 결과와 일치하는 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어떤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를 교회같은 신성지역으로 결론짓기도 한다. 드루이교 사제들은 스톤헨지가 영국 고대인들이 세운 신전이라고 주장하며 해마다 하지 때 연중행사를 이 곳에서 가진다. 또 어떤 학자들은 스톤헨지를 작은 고랑과 흙무더기를 포함한 가축 우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스톤헨지보다 800년 오래된 코프랜드 헨지(Coupland Henge)에서 울타리와 문이 남아 있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특정한 계절에 가축이 이동을 할 때 스톤헨지에서 종교의식을 행했으며, 시간이 흘러 그 기능은 쇠퇴하고 순수한 종교적 구조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1986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스톤헨지            (

출처-http://cafe.naver.com/firenze/1959139)

 

 

스톤헨지            (

출처-http://chestnutt.tistory.com/13?srchid=BR1http://chestnutt.tistory.com/13)

 

 

스톤헨지            (

출처-http://chestnutt.tistory.com/13?srchid=BR1http://chestnutt.tistory.com/13)

 

 

스톤헨지            (

출처-http://chestnutt.tistory.com/13?srchid=BR1http://chestnutt.tistory.com/13)

 

 

스톤헨지            (

출처-http://chestnutt.tistory.com/13?srchid=BR1http://chestnutt.tistory.com/13)

 

 

스톤헨지            (

출처-http://chestnutt.tistory.com/13?srchid=BR1http://chestnutt.tistory.com/13)

 

 

 

 

 

 

 

 

 

 

 

 

 

 

 

 

 

 

 

 

 

 

 

 

 

 

 (이상

출처-http://kr.blog.yahoo.com/lee1004gg)

 

 


스톤헨지 구조도

 

지름 114m의 도랑(ditch)과 도랑 안쪽에 만들어진 제방(bank)에 둘러싸여 2중의 고리 모양으로 세워진 82개의 입석(立石)의 뽑힌 자리가 보인다. 중심부에는 2중으로 환상열석과 말발굽 모양의 열석이 둘러쳐 있다. 바깥쪽의 환상열석은 지름이 30m인데 30개의 열석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 순석(楯石)을 난간처럼 걸쳐 놓았으며 지름 23m의 안쪽 열석에는 순석은 없다. 다시 안쪽에는 두 개의 입석 위에 횡석(橫石)을 놓은 5쌍의 삼석탑이 중앙의 제단석(祭壇石)으로 불리는 네모난 돌을 에워싸듯 놓여 있다. 이 석조구축물의 주축이라고 할 동북부에는 바깔 도랑이 잘리어 4각형의 광장이 부설되었고, 그 중간에 힐스톤(heel stone)이라고 불리는 1개의 돌이 있다.  

 

스톤헨지 구조도

 

 

스톤헨지 복원 상상도 

 

 

<우드헨지> 

 

 

우드헨지  Woodhenge                (이하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705328)

 

스톤헨지에서 약 10분쯤 떨어진곳에 있다. 1999년 발견되었고 스톤헨지보다 더오래되었다 한다. 그냥 보기에는 그저 나무기둥으로 만 보이기도 하는 이곳은 기원전 2300년에 지어진 도너츠형 건물의 유적이라 알려지고 있다 한다. 중앙에는 산체로 제물로 바쳐진 어린아이릐 유체가 매장된묘가 있다. 종교적의식이 행해졌던 곳으로 추측하고있다한다. 

 

 

 우드헨지  Woodhenge

 

 

실버리힐 Silbury Hill

 

기원전 2800년경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산이다. 고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무엇을 위해 만든것인지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있다 고분이거나 부족의 상징적 존재였던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에이브버리  Avebury                 (이하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705328)

 

스톤서클에 둘러싸여있는 미스테리마을..마을 전체를 에워싼 11만m2의 선사시대 유적지이다. 스톤헨지에서 북쪽으로 약 28km떨어진 마을이다. 고대 유적의 보고라 할수있는 이마을이다. 스톤헨지에 사용된 돌을 이곳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마을전체를 내셔날 트러스트에서 관리하고있다.

 

 

에이브버리 

 

 

에이브버리 

 

 

에이브버리

 

 

에이브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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