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시스 (Isis)

여성신,신화/이집트

by baesungsoo 2013. 3. 14. 13:42

본문

 

이시스(Isis), 바티칸박물관                (출처- http://www.cyworld.com/uridea/7793882)          


그리스어의 이세트에 해당하는 말로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데메테르, 헤라, 셀레네 등과 동일시되며 후에 이시스와 하토르가 혼동되자 아프로디테와도 동일시되었다. 이시스 신앙은 후세에 매우 대중적이 되어 다른 여신들의 자격을 거의 합해 버릴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나일강 델타 지대의 극히 얌전한 여신이었으며 부시리스 북방에 있는 페르 헤베트 의 여주인이었다고 한다. 이 패르 헤베트에는 인접한 도시의 자연의 신 오 시리스의 아내로 불렀고,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호루스와 더불어 오시리스 의 3인조를 구성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이야기해주는 그녀에 대한 전설은 다 음과 같다. 이시스는 게브와 누트의 장녀로서 에파고메노스의 4일째 델타 지방의 저습지에서 태어났다. 오빠인 오시리스의 아내로 택해진 그녀는 그녀와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좌에 앉아 오시리스의 개화 사업을 도와, 여자들에게 곡식을 빻고 삼으로 실을 만들어 옷감을 짜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그녀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결혼시켜 가정 생활을 하게 했다. 오시리스가 세계를 평화적으로 제패하기 위해 떠난 후 이시스는 이집트의 통치자 로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왕국을 현명하게 지배했다. 그런데 그들의 형제, 즉 난폭한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였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시스의 비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은 다음 '착한 존재'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관(棺)을 찾으러 나섰다. 반역자들은 그 관을 나일강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나일강의 지류인 타니스의 하구로부터 바다로 흘러든 그 관은 파도를 타고 페니키아의 해안에 있는 타마리스크(버드나무의 일종) 밑에 닿았다. 놀라운 속도로 자라는 그 나무는 그 관을 줄기 속에 완전히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나무는 뷔블로스의 왕 마르칸드로스의 명령으로 베어져 그의 궁전의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신비스런 나무는 야릇한 향기를 뿜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시스는 곧 그 까닭을 알게 되어 그 즉시 페니키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시스는 아스타르테 여왕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왕자에 대해 근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시스는 그 왕자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왕자의 몸을 깨끗이 하게 하기 위해 불로 목욕시키는 것을 본 여왕이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주문의 힘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시스는 여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곳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런 다음 궁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타마리스크의 신비스런 기둥을 넘겨받아 거기서 남편의 관을 꺼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후 이집트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세트의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관을 부토의 저습지에 감추었는데 세트는 우연히 자기 형의 시체를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열 네 토막을 내어 사방에 뿌렸다. 이시스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그 귀중한 잔해를 여기 저기서 찾아내어 거의 다 모았다. 이시스는 시체 토막을 교묘히 이어 붙여서 오시리스의 몸을 본래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어서 누이동생 네프티스, 조카 아누비스, 죽은 오시리스의 재상 토트, 그리고 아들 호루스의 도움을 얻어 죽은 시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을 처음으로 행했다. 이어서 그녀는 세트의 노여움을 피하고, 또 아들 호루스를 세트에게 복수할 수 있을 만큼 키우기 위해 부토의 저습지에 숨어 살았다. 어머니의 주문 덕분으로 호루스는 어떤 위험한 재난이라도 면할 수 있었다. 사실 이시스는 뛰어난 주술사였기 때문에 신들까지도 그 저주를 면할 수 없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태양신 라의 시중을 드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을 때, 그녀는 라에게 그 신비스런 이름을 물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태양신은 이미 늙고 쇠약하여 머리가 흔들리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이시스는 그 점을 이용해서 침이 밴 흙으로 독사 한마리를 만들어 태양신이 다니는 길목에 놓았고 독사는 태양신 라를 심하게 물었다. 그 뱀의 유래를 모르는 라는 그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몰라 이시스의 주문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이시스는 그 독액을 좀처럼 제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신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그 신비스런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다른 신이 모르는 사이에 라의 몸에서 이시스의 몸으로 옮겨갔다. 오시리스의 신화에서 이시스는 매년 나일강의 범람에 의해 기름지게 되는 이집트의 토양을 상징하고 있으며 나일강을 나타내는 오시리스나 기름진 토양인 이시스와는 정반대인 세트는 사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스 신앙은 점차 널리 퍼져 마침내는 다른 여신에 대한 신앙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신앙은 이집트 밖으로까지 퍼져 그리스,로마 시대의 상인들처럼, 뱃사람들은 바다의 별이며 항해자의 보호자인 이시스에 대한 숭배를 라인강 연안까지 전파시켰다. 나일강 유역에서는 이시스 숭배가 기독교의 전성기까지 계속되었다. 이집트의 최남단에 있는 이시스의 주요한 성소 필라에의 사원이 폐쇄되고 기독교의 교회로 바뀐 것은 6세기 중엽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치하에 까지 와서였다. 이시스를 위해 일년에 두 번(봄과 가을) 거행되는 대축전이나 그때 행해진 화려한 행렬 등에 관해서는 이시스교의 비의(秘儀)를 전수받은 아프레이우스가 그것을 전하고 있다. 이시스는 흔히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왕좌를 머리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때로는 두 개의 깃을 달고 - 달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쇠뿔 사이에 원반을 얹은 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때로는 인체에 쇠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뿔이나 동물의 머리는 당시 사람들이 이시스와 하토르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대체로 이시스는 조각이나 그림에는 오시리스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죽은 자들에게 대하듯 오시리스를 그 날개가 붙은 손으로 어루만져 떠받들고 있거나 돌로 만든관 밑에서 울거나 혹은 항아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빈번히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어머니로서 호루스를 키우는 모습과 나중에는 호루스를 데리고 세트와 싸우는 묘사도 있다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보물항아리) 이시스 상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보물항아리) 이시스 상

 

이시스

 


이시스 오시리스 호루스

 


이시스와 네프레티티 왕비

 


이시스와 오시리스

 

터키 파묵칼레 고고학박물관, 이시스 2세기 석상   (출처- http://toads.blog.me/20142743400)

 

'여성신,신화 > 이집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트(Nut, 이집트)  (0) 2013.05.05
마트 여신(Maat)  (0) 2013.05.05
세크메트(sekmet, Sakhmet)  (0) 2013.03.14
바스트(Bast, Bastet)  (0) 2013.01.14
하토르(Hathor)  (0) 2013.01.1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