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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Dionysus), 바커스(Bacchus)

남성신,신화/그리스,로마

by baesungsoo 2013. 4. 2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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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아기로 묘사
 

디오니소스, 폼페이, 주전50년경
 

디오니소스, 루브르박물관

 

바커스, 1497-98, 피렌체 바젤로국립박물관

 

술을 맛보는 바커스와 어린 목신 새티루스가 포도를 훔치는 장면이다

 


산소비노 작
 

디오니소스 상, 로마시대, 2세기 , 큐레네, 디오니소스 신전,

리비아, 대리석 ,높이 171, 대영박물관

 

현재 리비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도시 큐레네는 로마제국 밑에서 번영했는데, 이 아름다운 조각상은 바로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덩쿨과 포도송이로 이 신상이 주신 디오니소스임을 알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샌들을 신고 긴 히만티온(망토)을 왼쪽어깨에서 등으로 늘어뜨려 몸을 감싸고 왼손을 들어올려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들고 있다. 부드럽지만 남성적인 몸매이고 그의 성기는 노출되어 있다. 두텁게 접힌 망토의 질감이 매우 정교히 표현되었다. 뒷면이 평편하게 처리된 것으로 미루어 벽감이나 벽면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2세기의 한 유능한 조각가가, 기원전3세기 그리스 조각상을 모델로 모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모든 고대 조각상들이 그랬듯이 이 조각상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채색되어졌다고 보여진다. 눈과 덩쿨에 붉은색 안료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대에는 유두 같은 세부적인 것 이외에 몸 자체는 채색을 가하지 않고 피부의 부드러운 감촉을 대리석 표면으로 충분히 살리고, 채색된 옷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이 조상과 함께, 디오니소스의 시자인 포도 덩쿨을 두른 표범상과 본상이 세워졌음을 추측케하는 대좌도 발견되었다. 이 조각이 발견된 건물은 디오니소스 신전으로 밝혀지고 있다

 

바카스, 루브르박물관

 

바카스, 루브르박물관

 

바카스, 루브르박물관

 

바카스, 루브르박물관

 

바커스, 로마 캐피톨리네박물관   http://blog.naver.com/jun1s/10436468

 

바커스, 주후2세기, 런던 대영박물관,   http://blog.naver.com/jun1s/10436468

 

바커스 신, 바티칸 박물관

 

바커스 신, 바티칸 박물관 

 


디오니소스(소년),  귀도 레니 작

 

디오니소스를 표현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머리에 포도 덩쿨을 쓰고 있다. 이유는 그는 술의 신이며, 사람들에게 포도 제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며 동시에 자기의 신앙을 전파한다. 디오니소스가 헤라 여신 때문에 미쳐서 돌아다닐 때 제우스와 헤라의 어머니인 레아가 디오니소스의 병을 치유해 주고 후에 디오니소스의 축제 때 행해질 종교 의식을 전수해 주었다. 그 때는 새끼사슴의 가죽옷을 입어야 하기에 디오니소스의 옷은 사슴털 가죽옷이다.  성인이 된 디오니소스의 손에는 삿갓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덩굴장식이 화려한 튀르소스(Thyrsos)라는 막대기가 들려져 있다.

 


디오니소스의 항해, 뮌헨 고대 박물관

 


디오니소스, 4세기경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카라치 작

 

테세우스에게 반해 조국 크레타를 배반하고 실타래로써 영웅 테세우스를 구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그를 따라 나서지만 결국 버림 받아 낙소스섬에 남겨진다. 낙소스섬은 디오니소스에게 받쳐진 섬이다. 그녀 앞에 나타난 디오니소스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그녀를 아내로 삼는다. 지금 요정이 아리아드네에게 씌어주는 금관은 디오니소스의 사랑의 선물이다. 후에 디오니소스는 그 왕관을 하늘에 던져 영원한 영광의 징표인 별자리로 박아준다. 왕관에 박혀 있던 진주가 별이 된 것이다. 이 별자리가 왕관자리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샤를 드 라 포스 작

 


디오니소스와 미다스

 


디오니소스와 데메테르

 


디오니소스 

 


레오나르드 다 빈치 작  

 


 디오니소스 축제, 주카넬리 작

 


디오니소스 축제, 티치아노  

 

 

디오니소스 축제의 주신제는 차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광기와 난행에 가득한 것이었다고 한다. 광신도 여성들은 술에 취하면 발광하는 건 물론이고 곁에 있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저질렀다. 펜테우스가 어머니와 이모들 손에 찢겨 죽은 것도,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 처녀들에게 맞아 죽은 것도 모두 디오니소스 축제 때였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12월에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죽음을 통한, 죽음의 극복에 의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의미라고 한다. 바코스란 말 자체가 씨앗이다. 그러니 씨앗이 겨울이라는 죽음의 시간을 통해 몸을 썩히고 싹을 내고 대지에 생명을 퍼트려 열매를 맺는것이다  

 


디오니소스 신의 비의(秘儀) , 폼페이 벽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폼페이 베티에르의 집 벽화


네로 황제 시대(54∼68)의 벽화. 신화에 전해지는 디오니소스 의식을 그렸다. 의식을 받고 있는 헤르마프로디토스(가운데 반라의 인물로 양성이다)의 오른쪽에 서 있는 디오니소스의 신녀 마이나데스가 성욕을 증진시키는 약과 디오니소스의 상징인 솔방울 지팡이 티르소스를 들고 있다. 이 의식을 마치면 여자들은 격렬한 춤을 추며 여러 상대와 성관계를 갖게 된다   

디오니소스 신


그리스신화에서 매우 이색적인 성격을 가진 신으로 로마신화에서는 바쿠스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푸스의 신들 가운데서 그 내력이 분명하지 않은 신이며, 호메로스에서도 단지 포도를 재배하는 신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는 본래 북방의 트라키아 지방에서 온 신으로 식물의 생성과 번성의 신격이었던 듯하다. 그리스에서는 포도재배와 더불어 술의 신이 되어, 격렬한 도취상태가 따르는 종교적 광란의 제례는 오르페우스교 등의 신비적인 밀의(密儀)와 결부되었다. 디오니소스는 판·사티로스·실레노스 등을 종자로 하고, 횃불과 티르소스라는 담쟁이덩굴을 감은 지팡이를 흔들며 난무(亂舞)하는 신녀(바카이·마이나데스)를 거느리고 산과 들을 헤맨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세멜레는 질투하는 헤라의 말에 속아, 제우스에게 헤라한테 갈 때와 같은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나도록 요구했다. 할 수 없이 제우스가 뇌성벽력과 함께 침실에 나타나자, 그녀는 그 작열에 타서 죽는다. 그때 제우스는 세멜레의 태내에서 6개월된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맸다. 달이 차서 태어나면서부터 헤라의 박해를 계속 받은 디오니소스는 급기야 미치게 되어 이집트와 시리아로 헤매다닌다. 그러나 프리기아의 여신 레아에 의해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그녀로부터 비교(秘敎) 의식을 배웠다. 그때부터 그는 열광적인 신자를 거느리고 포교를 위한 편력과 박해에 대한 싸움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그것은 이 신의 승리와 영광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의 종교를 업신여기는 자에게는 가혹한 징벌을 내렸는데 많은 어둡고 비참한 이야기 중에 테베왕 펜테우스의 죽음은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신녀(信女)》에 잘 묘사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대치되어 예술의 격정적·본능적인 창작충동을 구현하는 것으로 취급되며, 특히 연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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