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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태양의 신전, 태양 축제(페루 쿠즈코 코리칸차)

타종교신전/잉카,마야신전

by baesungsoo 2005. 5. 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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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쿠즈코   

 

리마에서 동남쪽으로 약 580㎞, 해발 고도 3,740m 안데스 산중의 꾸스코 분지 에 위치하는 꾸스코는 잉카문명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기후는 쾌적하나 공기 밀도가 낮아 고산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꾸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13세기초에 건설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 서기 11세기부터 꾸스코를 중심으로 발흥한 잉카제국은 15세기 초 제9대 빠차꾸띠 황제시대부터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부 페루고원과 에쿠아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북부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인 망꼬 까빡(Manco Capac)을 최소의 선조로 섬겼으며, 아따우알빠(Atahualpa)왕이 스페인에 정복당하기까지 12대에 걸쳐 지속되었다. 잉카인은 스스로를 '따우안띤수유(Tahuantinsuyu)'라고 불렀는데, 이는 '4방위의 나라'라는 뜻이다. 꾸스코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4지역으로 뻗은 나라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감자, 옥수수, 코카 등을 주요작물로 재배하며 감자를 냉동건조시킨 '추뇨(Chuno)'를 주식으로 이용했고, 태양신을 섬겼다. 문자와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던 잉카제국은 발달된 석공기술로 황금이 가득한 태양의 신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대건축물을 남겼다. 16세기 스페인 식민통치로 잊혀졌던 태양의 도시의 신비는 20세기초에 와서야 처음 세상에 알려졌는데, 해발 2400m 위해 건설된 마추피추(Machu Picchu)도 그중 하나이다. 삭사이후아만(Sacsahuaman)요새와 꼬리칸차(Coricancha)신전 등도 거대한 돌을 종이 한장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정교하게 다듬고 짜맞춘 뛰어난 석조건물로 유명하다. 1533년 피사로에 의해 정복 된 후, 해안지방의 리마를 수도로 정하면서 역사속으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하였던 꾸스코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졌다. 현재 꾸스코는 태양을 모시던 태양신전, 잉카의 왕이 머물던 궁전 등은 부서지고 스페인식 교회와 수도원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라콤파냐 헤수스 교회, 라메르세 교회 및 수도원, 산토도밍고 교회,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 등이 바로 그러한 역사를 증명하는 유적들이다.

 

잉카인

 

잉카의 신화에 따르면, 비라코차라는 창조주가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천체 중에서도 태양은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으며, 그 아들 망코 카파크가 티티카카호에 내려와 잉카족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또는 쿠스코 남동쪽 파카리쿠탄포동굴에서 망코를 비롯한 잉카의 선조들이 나와서 쿠스코에 거주하였다고도 한다. 태양 외에 천둥·달·별 등도 신성시하였으며 또 대지모신(大地母神) 파차마마나 수신(水神) 마마고차에 대한 신앙도 민중 사이에 퍼져 있었다. 성스러운 영혼이 머무는 장소를 와카라 했으며, 인공신전이나 성소(聖所)뿐만 아니라 바위·산·샘에도 신령이 깃들인다고 여겼다. 쿠스코에는 시를 중심으로 350곳의 와카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시 중심에서 방사선모양으로 펼쳐진 세케라는 상상(想像)의 선(線) 중앙에 정연하게 배치되었다. 쿠스코의 최고 신관(神官)은 잉카와 같은 권위를 가지며 모든 신전과 와카를 지배하며 사제(司祭)의 임명권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쿠스코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던 해안지방 파차카마신전은 그 신탁(神託)이 중요시되어 에콰도르에서도 순례하러 왔다고 한다. 쿠스코와 각지방 신전에서는 역일(曆日)에 따라 제례를 거행했다. 쿠스코의 잉카는 쿠스코시 동쪽과 서쪽 언덕 위에 돌기둥을 세워 일출과 일몰의 각도를 관측하여 1년이 12개월인 사이클을 지켰다. 6월 동짓날의 태양제사, 9월의 달제사, 12월의 대제(大祭) 등이 특히 중요시되었다. 제사 때마다 다수의 라마·기니피그를 산 제물로 바쳤고 옥수수나 또는 그것으로 만든 치차술을 바쳤다. 희생된 라마의 폐장(肺臟) 상태를 보고 점치는 칼파라는 신탁도 행해졌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새로운 잉카의 즉위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행했다. 또 14세가 되는 잉카의 자제는 12월이 되면 쿠스코 근처 와나카우리언덕 위에 있는 와카에서 라마를 산 제물로 제사지내고 단식(斷食) 등의 의식을 마친 뒤에 전사(戰士)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산토 도밍고 교회                (출처- http://blog.daum.net/bwjung0503)

 

잉카제국 시대 태양신전 자리였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도 태양신전의 유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앞의 광장에서 매년 태양신 축제가 열린다 (아래 태양신 축제 사진 참조) 

 

산토 도밍고 교회    

 

산토 도밍고 교회

 

코리칸차 태양신전자리에 들어 선 산토도밍고 교회 

 

코리칸차는 잉카제국이 번창하던 시절 태양신전의 역활을 했던 곳으로, 쿠스코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코리칸차(Qoricancha)의 건물 부분은 파괴하고 돌로 된 초석을 남기고 그 위에 산토도밍고 교회(Iglesia de Santo Domingo)를 건설하였다. 신전 내부는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의 신전, 별의 신전(특히 금성을 신성시했다), 천둥과 번개의 신전, 희생의 신전등의 신전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방은 아름답고 견고한 석조벽을로 둘러싸여 있고, 벽에는 움푹들어간 자리가 있는데, 그곳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금이나 은 등의 장식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 금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어느 스페인 정복자의 글에서 신전의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때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있는 신전의 초석은 쿠스코 대지진에도 건재할 만큼 그 튼튼함과 정교함이 증명된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산토 도밍고 교회, 태양신이 내려와 물을 먹었다는 연못

 

산토 도밍고 교회

 

산토 도밍고 교회

 

성당내부                   (출처- http://blog.daum.net/bwjung0503)

 

성당내부  

 

태양신전의 달의 신전

 

태양신전의 달의 신전

 

 

태양신전의 달의 신전

 

태양신전의 달의 신전

 

 

 


산토 도밍고 교회(태양의 신전)의 태양신 방의 벽

 

신전이기 보다는 지금은 벽밖에 남지 않았지만, 옛날엔 황금과 각종 보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군들이 다 녹여서 본국으로 가져갔다. 

 


태양신전의 희생의 신전, 제물을 드리던 신전

 

 

 

 

 

산토 도밍고 교회 (태양신전) 광장에서 열리는 잉카 태양신 축제   (출처- http://www.tc114.com/)

 

매년 6월에 열리는 잉카 태양신 축제는 삭사이우아만 요새에서 시작되어 태양신전에 있었던 산토 도밍고 성당에서 의식을 마치게 된다.  삭사이우아만 요세에서 잉카 축제를 진행하고 난 후 왕은 신전으로 행진을 시작하는데 이 행렬의 선두에는 깃발이, 그리고 병사들은 무기, 장군들은 금방패를 들고서 왕의 행렬을 따른다. 그리고 귀족들도 화려한 장식의 의복을 입고서 그 뒤를 따른다. 이 신전 안에는 왕과 그 혈족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신전에 선물을 바치는 의식이 끝나면 다시 행렬을 지어 또 다른 제단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각 지역에서 뽑혀 온 수십 마리의 야마 중에서 가장 흠이 없고 건강한 살아있는 야마를 신께 바치는 예식이 시작되는데 왕은 이 때 야마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색깔을 보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고 한다. 모든 제물이 태워지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이 제사는 끝이 나고 그때부터 술과 노래와 춤으로 가득 찬 본격적인 축제가 9일 동안 열린다.

 


잉카 태양의 축제 왕의 행렬

 

잉카인들은 왕을 태양의 아들로 현인시하여 잉카라고 칭하고 그들의 나라를 ‘태양의 제국’이라 불렀다. 따라서 태양의 아들인 왕은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한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등 태양제 기간 동안의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맡아 하였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매년 이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왕을 잉카인의 후손 중 기골이 장대하고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사람으로 선출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왕은 같은 부족 중 미모와 예술적인 능력을 가늠하여 선출한다고 한다. 

 

 

 

 

 

 

  

 

 

 

 

 

 

 

 

<삭사이우아만 요새 잉카 태양 축제 장면>

 

잉카 태양의 축제

 

인티 라미(Inti Raymi)라고 불리우는 페루의 태양제는 잉카시대부터 계속 되어온 태양신을 위한 제전으로 매년 6월에 한해 농사의 풍요와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태양에게 감사를 드리는 하나의 종교적 행사이다. 이 축제의 기저에는 잉카인들의 자연숭배 사상, 특히 태양에 대한 잉카인들의 숭배사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잉카인들에게 태양(인티, Inti)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먼저 잉카의 신화를 살펴보면 잉카인들이 왜 태양을 그토록 숭배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 때 콜라수유라는 호수에서 콘 티키 비라코차 신(창조의 신, 바다로부터 상륙한다는 구원의 신)이 세 명의 인간을 데리고 나타났다. 콘 티키는 세상을 밝게 비추기 위해 해(인티)와 달과 별들을 창조했다. 타완티수요의 황제인 잉카는 바로 콘 티키가 만든 해의 자손이다. 콘 티키는 커다란 바위들을 가지고 인간을 더 만들었다. 그 가운데는 이미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여자들도 있었다. 콘 티키는 이 사람들을 세상 곳곳으로 떠나 보냈다. ‘세상의 중심'인 쿠스코에는 남자와 여자 한 쌍만 남겨 두었다. 이들은 태양신의 아들 망코 카팍과 딸 마마 오쿠요였다. 콘 티키는 그들에게 금지팡이를 주어 티티카카 호수의 한 섬에 내려보낸 다음 그 금지팡이가 박히는 곳을 도읍터로 하여 나라를 세우라고 하였다. 이 남매는 여러 날 고생 끝에 금지팡이가 깊숙이 꽂히는 곳을 발견했는데 이 곳이 ‘지구의 배꼽’인 쿠스코이며 이 곳을 수도로 하여 세운 나라가 잉카 제국이고 동서남북 4방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타완틴수유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이 신화는 잉카인들이 태양의 신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잉카인들은 태양을 우주의 중심적 존재, 가장 성스럽고 절대적인 존재로 숭배하였다. 따라서 태양이 사라지면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사라진다고 믿었다. 자연스레 그들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일식은 세상이 다시 창조되는 것이며, 사람도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게 되었고, 이때를 기하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들은 그들의 왕을 태양의 아들로 현인시하여 잉카라고 칭하고 그들의 나라를 ‘태양의 제국’이라 불렀다. 따라서 태양의 아들인 왕은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한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등 태양제 기간 동안의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맡아 하였다. 이 태양제는 매년 6월 24일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근처의 삭사이우아만이라는 요새에서 9일 동안 성대하게 이루어진다. 우선 축제가 시작하기 3일전부터 왕과 그의 백성들인 원주민들은 옥수수와 츄칸잎만 먹으면서 금식을 하고,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 그리고 전날 밤에는 태양을 맞기 위해 모든 불을 끄고 사람들은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 집결하여 경건히 태양을 기다린다. 드디어 태양이 솟아오르면 왕은 제단에 올라 양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환호와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왕은 황금잔 안에 들어있는 치차술(이 술은 평생 동정녀로 지내면서 오직 잉카왕과만 접촉이 허락되는 여인들이 은밀한 곳에서 빚은 술임)을 태양신에게도 바치고 자신도 마신 후 이를 광장 중앙에 있는 거대한 돌에 붓는다. 이렇게 거대한 돌에 술을 붓는 이유는 이 술이 산과 계곡으로 흘러들어 흙을 적시고 그러면 태양신의 목마름이 해갈될 것이라는 잉카인들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어 왕은 신전으로 행진을 시작하는데 이 행렬의 선두에는 깃발이, 그리고 병사들은 무기, 장군들은 금방패를 들고서 왕의 행렬을 따른다. 그리고 귀족들도 화려한 장식의 의복을 입고서 그 뒤를 따른다. 이 신전 안에는 왕과 그 혈족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신전에 선물을 바치는 의식이 끝나면 다시 행렬을 지어 또 다른 제단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각 지역에서 뽑혀 온 수십 마리의 야마 중에서 가장 흠이 없고 건강한 살아있는 야마를 신께 바치는 예식이 시작되는데 왕은 이 때 야마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색깔을 보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고 한다. 모든 제물이 태워지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이 제사는 끝이 나고 그때부터 술과 노래와 춤으로 가득 찬 본격적인 축제가 9일 동안 열린다. 오늘날의 태양제는 규모상으로 보았을 때 과거 잉카시대에 이루어지던 것보다 그 규모가 상당히 작아졌다.  하지만 그 형식에 있어서는 당시의 의식 그대로를 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그 의식속에서는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인종적인 면이다. 과거에는 정통 원주민들만 참여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메스티조들이 축제에 참석하여 백성들의 대부분이 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행렬이 스페인 정복자들의 광포한 정책으로 인해 훼손된 잉카문명의 토대 위에 세워진 스페인 문화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 침략자들은 잉카의 태양의 신전을 부수고 그 위에 산토 도밍고 성당을 세웠으며, 태양의 처녀집은 수녀원으로 그리고 잉카제국의 힘과 웅장함을 대변하던 왕궁을 성당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이들의 행렬은 무척 아이러니컬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행렬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과거 잉카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의 착잡한 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침략자들에 의해 그들 문화의 몸통 위에 이질적인 머리가 얹혀지고 본래의 의도에서 불순한 것으로의 강제변형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들 문화의 곳곳을 살펴보면 잉카의 후손들은 아직까지 그들 선조의 정신과 생명력을 아직까지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어쩌면 지금의 잉카의 후손들에게 잉카제국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고있는 진행중인 제국일 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매년 6월이 되면 쿠스코에는 태양제에 참석하기 위해 축제 시작 일주일 전부터 안데스 산맥 곳곳에 흩어져 살던 원주민들이 축제의 복장, 즉 전통의상을 입고 쿠스코의 시내로 몰려와 시내는 일찍부터 축제의 분위기에 젖는다. 이들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계급의 전통의상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간단한 복장을 통해서 왕족, 귀족, 평민, 농민의 계급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축제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잉카의 후예 전체가 참여하고 또 그들에 의해 이끌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축제는 그들에게 1년간의 힘든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을 통해서 풀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태양제는 그들에게 고산지대에서의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당당한 모습으로 잉카왕국의 백성이 되어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삭사이우아만 요새의 잉카 태양신 축제      (출처- http://www.tc114.com/)

 

 

 

 

 

 

 

 

 

 

 

 

 

 

 

 

 

 

 

 

 

 

 

삭사이우아만 요새에 모인 관광객들 

 

 

 

 

 

삭사이우아만             (출처- http://blog.daum.net/bwjung0503)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던 요새. 하루 3만명을 동원하여 8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며 높이 7m무게 120톤의 엄청난 돌을 3층으로 다른 석조들처럼 빈틈없이 정교하게 쌓아졌다. 삭사이우아만은 ‘면도날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표현되는 잉카제국의 석조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의 돌들은 엄청난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잘 다듬어진 마름모꼴로 막쌓기를 하여 높게 축조되어 있다. 이곳에서 남미 3대 축제(브라질의 카니발, 볼리비아의 오르로)의 하나인 인띠라이미(태양의 축제)가 열린다. 하늘과 땅의 태양신의 아들 잉카의 제국을 이어주는 축제를 열었는데, 고대 잉카제국의 길흉과 안녕을 기원하는 최대의 행사가 되었다.

 

삭사이우아만, 1450∼1532년경

 

삭사이우아만은 쿠스코 마을에 인접한 북측의 산 위에 있다. 길이 300m 이상인 3개의 기단으로 구성되고, 기단을 지탱하는 석벽은 지그재그 狀을 하고 있다. 기단의 전면에는 광장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졌고, 그 맞은 편에는 암반이 노출된 작은 언덕이 연이어 있다.

 

삭사이우아만 신전

 

삭사이우아만

 

 삭사이우아만

 

 

 

 

삭사이우아만 땀보마차이


마르지 않는 샘물,  성스러운 샘, 물의 신전이며 잉카제국의 목욕터 였던 곳이다. 지금도 늘 같은 양의 물이 솟아나고 있으며 샘은 세 단계를 거쳐 아래로 흐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삭사이우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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