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eus Slaying Minotaur (1843), bronze sculpture by Antoine-Louis Barye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테세우스 (Theseus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티카(Attica)의 영웅이다. 크레타 섬의 미궁에서 괴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물리치고 아마존을 정복하였으며 아테네를 융성하게 하였다.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이고, 어머니는 트로이젠 왕 피테우스의 딸 아이트라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이트라가 부모라고도 한다.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얻지 못해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물었더니 아테나이로 돌아갈 때까지는 아예 술 부대의 마개를 열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게우스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테나이로 돌아오는 도중에 트로이젠 시에 들려 트로이젠의 왕인 피테우스의 집에 잠시 묵게 되었다. 그는 그의 딸이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게우스를 술에 취하게 해 놓고 딸인 아이트라와 하룻밤을 지내게 했다. 다음날 아이게우스는 떠날 때 아이트라를 어느 큰 바위로 데리고 가더니, 바위 밑에다 샌들과 칼을 묻어두고서 아이트라에게 말하기를 만일 아들을 낳아 청년이 되어 이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면 바위 밑에 넣어 둔 샌들과 칼을 가지고 아테나이로 찾아와 자기의 뒤를 잇게 하라고 하며 떠났다. 세월은 흘러 마침내 테세우스가 장성하자 아이트라는 테세우스를 아테나로 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테세우스를 바위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장정이 된 테세우스는 쉽게 바위를 들어올려 칼과 구두(샌들)을 꺼냈다.
그 무렵 육로에는 도둑들이 횡행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더 가깝고 안전한 길-해로-을 택해 그의 아버지의 나라로 가도록 간청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젊은 마음에 영웅심이 불타올라 자기도 당시 그리스에 명성이 높았던 헤라클레스와 같이 그 나라를 괴롭히고 있던 나쁜 놈들과 괴물들을 퇴치하여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모험적인 육로를 택했다. 여행 첫날에 그는 에피다우로까지 갔다. 이곳은 헤파이스토스와 아들인 페리페테스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 사내는 광포한 야만인으로, 항시 쇠망치를 지니고 다녔으므로 모든 여행자들은 그에게 폭행을 당할까 겁을 먹고 있었다. 테세우스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자, 그는 돌격하여 왔으나 곧 젊은 영웅의 일격을 받고 쓰러졌다. 테세우스는 그의 쇠망치를 뺏아 최초의 승리의 기념으로 그후 가지고 다녔다. 그후에도 그 지방의 약탈자들과 승부를 여러 번 겨뤘는데, 모두 테세우스가 승리했다. 그중의 하나로 프로크루스테스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늘리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는 쇠침대를 가지고 있어 그의 수중에 들어온 모든 여행자들을 그 위에 결박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신장이 침대보다 짧은 경우에는 몸을 늘려서 침대에 맞도록 하고, 반대로 신장이 침대보다 길 경우에는 일부분을 잘라 버렸다. 테세우스는 이자도 다른 자와 마찬가지로 처치했다.
Theseus Defeats the Centaur by Antonio Canova (1804–1819), Kunsthistorisches Museu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도중의 모든 위험을 정복하고서 테세우스는 마침내 아테네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도 새로운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사 메디아가 이아손과 이별한 뒤에 코린토스에서 도망해 온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메디아는 마법에 의해 젊은이가 누구인가를 알고 만약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인정되면, 자기가 낳은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메데이아는 오래 전에 스퀴티아 해변에서 따온 바곳이라는 독초로 독약을 제조하여 테세우스를 죽이고자 했다. 이 약초는 저승궁을 지키는 개 케르케로스의 이빨에서 생겨난 풀로 알려져 있다. 스퀴티아에 이 약초가 있었던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동굴이 저승 세계로 통하기 때문이다. 티륀스 영웅 헤라클레스가 저승으로 내려가 몸부림치는 이 케르베로스를 사슬로 묶어 나온것도 이 동굴을 통해서였다. 당시 날빛을 쐰 적이 없는 이 개는 날빛 나래로 나오자 세 개의 머리를 내두르고 몸부림치면서 몹시 짖었는데 이 바람에 이 개의 침이 바닥을 적셨다. 이 침이 굳어졌다가 기름진 대지에 뿌리를 박고 풀로 돋아나니 바로 그 유명한 독초가 된 것이다. 이 풀이 단단한 바위 위에서만 자란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것을 <아코니톤-바위꽃>이라고 부른다.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의 심중에 젊은 객에 대한 의구심을 충만케 하여, 객에게 독배를 대접케 하도록 권유했다.그리하여 아이게우스는, 메데이아가 독약을 타서 건네준 술을 테세우스에게 권했다. 테세우스는 영문을 모르고 이 독약이 든 술을 마시려 했다. 그러나 아이게우스는 그 순간 테세우스가 찬 칼의 상아 자루에 자기 왕가의 문장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달려들어 잔을 빼앗아 버렸다. 메디아는 간계가 발각되자, 주문을 외어 검은 구름을 일으키고는 그 안으로 숨어들어 아시아 지방으로 도망쳤다. 이 지방은 후에 메디아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Theseus saves Hippodameia, work by Johannes Pfuhl in Athens (출처-
테세우스는 그의 아버지에 의하여 인정을 받고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이 무사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한편 자기가 지을 뻔했던 죄에 대하여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몹시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는 제단에 불을 밝히고 신들에게 많은 제물을 바쳤다. 목에 꽃다발을 두른 수많은 황소들이 제단의 도끼날을 받고 쓰러졌다. 아테나이 사람들로서는 처음으로 누려보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수많은 도시국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이 잔치에 참석했다. 포도주가 입을 열게 하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테세우스를 찬양했다. "전능하신 테세우스시여, 그대는 그 뛰어난 무용으로 크레타의 황소(헤라클레스가 크레타에서 끌고와 마라톤 평야에 풀어놓았던 황소)를 죽임으로써 마라톤 평원에다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그대의 공덕에 힘입어 크로미온의 농부들은 멧돼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에피다우로스 사람들은 무지막지한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불카누스의 아들이 그대의 손에 거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웅이시여, 그대는 케피소스 강가에서는 프루크루스테스를 죽이셨고, 테메테르의 땅인 엘레우시스에서는 케르퀴온을 처단하시었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휘어 줄로 단단히 묶고, 길손을 붙잡아다 가랑이를 이 소나무에 각각 하나씩 묶었다가 줄을 끊어 길손의 가랑이를 찢어 죽이는 저 악명높은 시니스 역시 영웅의 손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영웅께서 저 도둑 스키론을 잡아죽이신 이래로 알카토에와 메가라로 가는 길에서는 이제 근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굴러다니다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스키론-석회석>이라고 부른다지요. 누가 그대의 나이를 듣고 그대의 공적을 믿으려 하리요. 그대는 어리신 연치에 참으로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영웅이시여,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잔을 받으소서" 궁전은 환호성과 백성이 부르는 노래로 떠나갈 듯했다. 아테나이 온 도시에 근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으나 그 무렵, 아테네 사람들은 크레타 왕 미노스에게 바치도록 강요당한 조공(조공)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 조공이라는 것은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들로서, 이들은 소의 몸뚱이와 인간의 머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의 밥이 되기 위해 매년 보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단히 억세고 사나운 짐승으로서, 다이달로스라는 사람이 만든 미궁 속에 갇혀 있었는데, 그 구조가 대단히 교묘하여 그 속에 갇힌 자는 누구나 혼자 힘으론 탈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마노타우로스는 그속에서 돌아다니며, 인신의 희생물로써 사육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구하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조공을 할 시기가 다가와서, 희생될 소년과 소녀들이 관례에 따라 추천에 의하여 결정될 때, 테세우스는 그의 아버지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하여 희생될 포로들과 함께 크레타로 떠난다. 테세우스가 소년과 소녀들 틈에 섞여 크레타에 도착하자, 미노스 왕 앞으로 나갔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임석한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잘생긴 모습을 보자 첫 눈에 반해버린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괴물을 찌를 칼과 미궁에서 빠져나올 실 한타래를 주었는데,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다음에는 실타래의 실을 따라 무사히 라비린토스(미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로인해서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하면 난문을 푸는 실마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향하는 항해도중 네소스 섬에서 그녀가 잠든사이에 달아나 버렸는데 꿈 속에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녀는 테세우스의 아이를 잉태한 상태였다. 그후 아라드네의 운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난산으로 죽었다는 설이 있고 또 비탄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는데 디오니소스가 살려내어 아내로 삼았다고 하기도 한다
Theseus with the head of Minotaur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앗티카의 해안에 접근했을 때, 테세우스는 그의 아버지와 한 약속을 깜박 잊고 흰 돛을 달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떠날 때 아버지인 왕에게 약속을 했었다. "무사히 괴물을 퇴치하고 돌아올 때는 배에 흰 돛을 달겠습니다" 그러나 막상 돌아올 때는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검은 돛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부왕은 바닷가에서 이를 바라보곤 슬픔을 못이겨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후에 아이게우스왕이 자살한 바다를 아이게우스의 이름을 따서 아이게우스해(에게해)라고 부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테세우스의 모험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존족의 원정이다. 그는 그들이 헤라클레스에게서 받은 타격으로부터 회복되기도 전에 엄습하여 여왕 안티오페를 납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마존족들이 아테네에 침입하여 시중까지 쳐들어왔다. 테세우스가 그들을 정복한 최후의 전투도 다름아닌 아테네 시 가운데서 행해졌다. 이 전투는 고대의 조각가들이 즐겨 선택하는 제재의 하나로서, 현존하는 몇 가지 예술 작품 중에 그 모습이 남아 있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의 우정은 가장 친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전쟁 중에 시작된 것이었다. 페이리토오스는 마라톤 평야에 침입하여 아테네 왕이 소유하고 있는 소떼를 약탈해 가려고 했다. 테세우스는 약탈자를 격퇴하러 갔다. 페이리토오스는 그를 본 순간 감동했다. 그는 화평의 표시로서 손을 내밀고 부르짖었다. "처분을 하시오. 무슨 배상을 원하시오?" "그대와의 우정을!" 하고 테세우스는 대답했다. 그래서 그들은 변함없는 우정을 서약했다. 그들은 각자 제우스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테세우스는 그때는 아직 어렸던 헬레네를 선택했고 후에 그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페이리토오스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납치했다. 페이리토오스는 하계의 여왕을 원했다. 테세우스는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대망을 품은 그 벗과 더불어 하계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하계의 왕 하데스에게 잡혀서 궁전의 문 옆에 있는 마법을 가진 바위 위에 방치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마침내 헤라클레스가 와서 테세우스를 자유의 몸이 되게 했지만, 페이리토오스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안티오페가 죽은 뒤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딸 파이드라와 결혼했다. 테세우스에게는 힙폴리토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파이드라는 아버지와 같은 매력과 미덕을 겸비하고 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이 의붓 아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힙폴리토스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새어머니의 부도덕함을 단호히 꾸짖었고, 거절당한 사랑에 대한 수치심과 증오심으로 파이드라는 테세우스 앞에 나아가 힙폴리토스가 어머니인 자신을 범했다고 음해하고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이에 분노한 테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패륜아인 아들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테세우스의 간청을 들은 포세이돈은 힙폴리토스가 해안가에서 이륜마차를 몰고 있을 때, 바다 괴물을 보내어 힙폴리토스의 이륜마차를 산산이 부숴버려 힙폴리토스의 목숨을 거둔다. 그러나 후설에 의하면 죽은 힙폴리토스를 아르테미스의 조력에 의하여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살려내게 되고, 아르테미스는 힙폴리토스를 온전한 정신을 잃은 아버지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이탈리아에 데려다 놓고, 에게리아라는 님프로 하여금 보호케 했다고 한다
Theseus captures the Marathonian Bull (kylix painted by Aison, 5th century BC) (출처-
테세우스는 마침내 국민의 지지를 상실했으며, 스키로스의 왕 뤼코메데스의 궁전으로 은퇴했다. 뤼코메데스는 처음에는 그를 따뜻이 맞았으나 뒤에 배반하여 그를 죽였다. 후년에 아테네의 키몬 장군은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테네로 옮겼는데, 유해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테세이온이라 불리는 신전에 안치했다. 테세우스가 자기의 아내로 삼은 아마존족의 여왕은 일설에는 힙폴뤼테였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속에서 이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그리고 이 작품의 주제는 테세우스와 힙폴뤼테의 결혼식에 따르는 흥겨운 잔치이다. 테세우스는 반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그는 그 당시 앗티카 지방을 점유하고 있던 여러 종족을 한 나라로 통합했는데, 그 수도가 아테네였다는 것이다. 이 대사업의 기념으로 그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해서 판아테네라는 축전을 창시했다. 이 축전은 그리스의 다른 축전과 주로 두가지 점에 있어서 상이하였다. 그것은 아테네 사람들에게만 한한 축전으로서 그 중요 행사는 엄숙한 행렬을 지어 페플론, 즉 아테나의 성의를 파르테논에 가지고 가서 여신의 상 앞에 걸어놓는 일이다. 페플론에는 전면에 수를 놓았는데, 그것은 아테네 최고의 명문의 처녀를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만들게 한 것이었다. 행렬에는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참가했다. 노인들은 손에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젊은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행진했다. 젊은 여자들은 성기와 과자와 기타 제물을 올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행진했다. 행렬은 파르테논 신전이 외부를 장식한 부조의 주제가 되었다. 이 조각의 상당한 부분이 지금 영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엘긴 대리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조각 중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그리스의 다른 유명한 국민 경기에 대해서 말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최초에 시작되었고 가장 유명한 것은 올림피아 경기로서, 제우스 자신이 창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기는 엘리스 지방에 있는 올림피아 평원에서 행해졌다. 많은 관람객들이 그리스에서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시켈리아로부터 모여들었다. 경기는 5년에 한번 성하에 열려 닷새 동안 계속되었다. 이 경기를 표준으로 하여 올림피아 해라는 연대 구분의 관습이 생겼다. 제1회 올림피아 해는 보통 B.C. 776년에 해당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피티아[피톤] 경기는 델포이 부근에서 행해졌고, 이스트미아 경기는 코린토스 지협에서, 네메아 경기는 아르고스 지방에 있는 네메아에서 행해졌다.이러한 경기에 있어서의 운동의 종목은 다섯 가지였다. 경주 · 도약 ··레슬링 ·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혹은 권투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육체적인 힘이나 민첩성의 경기 이외에 음악 · 시 · 웅변대회도 있었다
Detail of the kylix at right: Theseus and the Crommyonian Sow, with Phaea (출처-
The deeds of Theseus, on an Attic red-figured kylix, ca. 440–430 BCE (British Museu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Theseus carries off the willing Helen, on an Attic red-figure amphora, ca. 510 BCE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Theseus and Aethra, by Laurent de La Hyre, 장정이 된 테세우스는 쉽게 바위를 들어올려 칼과 구두(샌들)을 꺼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seus) The AMAZONS attacked Athens and were vanquished by Theseus. 0112: Amazonentriptychon 1887. Mittelstück: Amazonenjagd. Adolf von Hildebrand 1847-1921. Neue Pinakotek, München. (출처- http://www.maicar.com/GML/Theseus.html) Minotaur bust,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Athens)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inotaur) William Blake's image of the Minotaur to illustrate Inferno XII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inotaur)
Keuninck Kerstiaen - 아테나로 여행중인 테세우스
w. Russell Flint - 테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메데이아
Theseus and Ariadne. Sculpture by Adamo Tadolini, 1788-1868. Pinacoteca Nazionale, Bologna.
에버린 드 모르간 -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피에르 게랭 - 테세우스와 파이드라, 히폴리토스
우라노스(Uranos) (0) | 2014.01.22 |
---|---|
페르세우스(Perseus) (0) | 2014.01.22 |
티탄신(titans) (0) | 2014.01.22 |
피톤(Python) (0) | 2014.01.21 |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0) | 2014.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