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푸 사원 전경
왓푸 왕궁 사원
왓푸 왕궁 사원
왓 푸 사원
15세기 시암족의 침투로 힌두교의 시바와 칼리 신들이 불상으로 대체 되었다
15세기 시암족의 침투로 힌두교의 시바와 칼리 신들이 불상으로 대체 되었다
15세기 시암족의 침투로 힌두교의 시바와 칼리 신들이 불상으로 대체 되었다
왓푸는 원래 힌두사원으로 지어져, 후에 불교사원으로 일부 개조되었다. 처녀들이 시바신에게 기도를 드리고있다.
왓푸는 처음에 힌두사원으로 지어졌다. 사암에 새겨진 조각들은 현재 캄보디아의 앙코르의 것보다 오래되고 다소 투박한 형태를 띄고 있으나, 스타일은 여러면에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왓푸 왕궁 사원, 지진으로 무너진 왕궁터
왓푸 사원 악어모양의 돌
당시 제물로 처녀들을 희생했던 돌이 남아있는데, 돌에는 악어모양의 홈이 깊게 파여 있고 그 홈을 따라 처녀를 눞인 다음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옆으로 받아서 칼리에게 바쳤다고 한다.
시바와 우마(시바의 아내 칼리)가 난디를 타고있는 부조
시바의 링감과 대조되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yoni
왓 푸(Wat Phu) 사원- 라오스 참파삭 크메르 유적지
왓푸는 6세기경 메콩강에서 약 2km 떨어진 이 곳 산기슭에 목조로 처음 건축되었다. 왓푸는 산사(山寺)라는 뜻이고, 이 산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링카프라와타', 라오스어로는 '푸카오'라 불리는데 '남근산(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산의 정상은 시바신(神)의 상징인 '링검(남근상)'을 닮아있고 이것이 바로 이곳에 사원을 지은 결정적인 이유로서 사원은 이 산 기슭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힌두교에서 이러한 남근상은 매우 신성시되는 것으로서 생명력과 양기, 그리고 생산능력을 상징한다. 처음 지어진 목조 건축은 9세기에 불타버리고, 그 위에 다시 지금의 사원이 지어지게 되었다. 사원으로부터 평지까지는 7단계의 층으로 이어져있는데, 각 층은 7개의 계단으로 되어있으므로 모두 77개의 계단이 되는 셈이다. 크메르 양식의 층계는 가파른 것이 특징인데, 이곳의 층계 역시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왓의 그것처럼 가파르게 되어있다. 뒤쪽에는 커다란 바위 밑으로 샘물이 나오는데, 이 샘물은 당시부터 매우 성스러운 성수로 사용되었다. 사원 바로 뒤쪽으로 조그만 안뜰을 만들어 놓고 사흘에 한번씩 사원 주위의 크고 작은 '링검'들을 모두 모아 이곳에서 바위로부터 이어진 수도를 통해 성수로 씻는 의식을 갖곤 했다. 평지에는 양 옆으로 붉은 사암으로 지은 두 개의 크메르 양식의 커다란 궁전이 있는데, 하나는 여자의 궁전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의 궁전으로서 사원을 순례하는 사람들이 남녀로 나뉘어 사원을 참배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닦고 순서를 기다리며 담소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커다란 사암의 바위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벽돌로 제단하고 가공해서 궁전과 사원을 지은 흔적이 궁전 뒤뜰에 남아있다. 궁전의 건너편으로는 역시 이 산으로부터 흘러나온 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장방형 연못이 있는데, 당시 악어들을 사육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7세기부터 둥지를 틀고 살아왔던 크메르인들은 이곳에 처음으로 산기슭에 사원을 짓고 그 밑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2km 앞의 메콩강까지 이르는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이곳으로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13세기에 이들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여 지금의 캄보디아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그곳에 거대한 앙코르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14세기 후반에 앙코르제국은 시암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 거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유적이 이후에 모두 갑자기 사라져버렸는지 오늘날에도 베일에 쌓여있다. 아무튼 크메르인들은 당시 풍수지리를 참고하여 시바의 상징인 링검(남자의 성기모습을 한 생명력의 상징)처럼 생긴 산기슭에 사원을 만들었고, 수도를 앙코르왓으로 이전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고향인 이곳의 사원으로 해마다 순례를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 이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6월이 되면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악의 여신인 칼리(시바신의 아내 우마의 변신)에게 바쳤다. 당시 제물로 처녀들을 희생했던 돌이 남아있는데, 돌에는 악어모양의 홈이 깊게 파여 있고 그 홈을 따라 처녀를 눞인 다음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옆으로 받아서 칼리에게 바쳤다고 한다. 오랫동안 숲 속에 파묻혀 있던 왓푸는 15세기 뒤늦게 이곳으로 침투하였던 시암족에 의해 불교가 전해지면서, 사원 안에 있던 칼리와 시바의 석상은 불상으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여러 신들의 조각으로 현란한 힌두양식의 건축물 내에 불상이 서있는 기이한 형태의 사원의 모습으로 되어있게 되었다.지금은 17세기 경에 있었던 대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물론 이 사원과 궁전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다. 왓 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세시 후반, 한 프랑스의 여행가에 의해 다시 그 모습을 내보였으나, 이미 지진과 관리부재로 인해 폐허가 된 상태였다. 이 왓푸의 유적 일대는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유네스코에서 그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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