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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프쉬케(Eros et psyche)

남성신,신화/그리스,로마

by baesungsoo 2013. 5. 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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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궤로 - 프쉬케와 에로스

 

부셰 - 자매들에게 큐피트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프쉬케

 

워터하우스 - 큐피트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프쉬케

 

월리엄 부궤로 - 큐피트와 프쉬케

 

프란코시스 제라르 -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프쉬케

 

프레더릭 레이턴 - 목욕하는 프쉬케

 

프뤼동 - 서풍에 실려가는 프쉬케

 

프리고나르 - 프쉬케와 그녀의 언니들

 

피코 - 프쉬케를 떠나는 에로스

 

Charles Joseph Natoire - 프쉬케의 화장

 

Edward Matthew Hale - Psyche at the Throne of Venus

 

Filippo Pelagio Palagi- Betrothal of Cupid and Psyche

 

gulilaume seignac -프쉬케
 

Louis Jean Francois Lagrenee - 에로스와 프쉬케

 

Luca Giordano - Psyche Honoured by the People

 

Burne Jones, The Wedding of Psyche, 1895, Oil on canvas,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Belgium

 

David, Jacques-Louis, Cupid and Psyche, 1817, oil on canvas,

The Cleveland Museum of Art

 

paul Alfred de Curzon - 지하 세계의 프쉬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와 프쉬케, 대영박물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 루브르박물관

 

에로스(Eros)는 바로 '사랑'이다. 에로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사랑'의 아들인 또 하나의 '사랑'이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이 그랬듯이 에로스의 사랑 또한 육체적인 사랑이다.' 에로틱(erotic)이라는 말은 '에로스적' , 즉 '성적'이라는 뜻이다. 성적이라는 말은 성적인 욕망을 자극하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하는 에로스 이 야기를 보라. 사랑에는 육체적인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깃들일 수 없는 것... 이것이 사랑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인간을 만든 이는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라는 말은 '먼저 아는 자'라는 뜻이다. 선각자, 즉 먼저 깨달은 자와 선견자 즉 먼저 본 자라는 뜻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장자 올 세상을 먼저 깨달아 알고 인간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 만물의 씨앗이 두루 들어 있는 흙을 썼는지, 자신의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은 물질을 썼는지 그것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에다 물을 부어 이기고 신들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빚어 이를 이레 동안 볕에다 말리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 한 꼭지가 따라 붙는다. 그가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하는 찰나,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지나가다 나비 한 마리를 날려보냈다는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이 나비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어로 나비는 '프쉬케(psyche)다' 그러면 진흙 인간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 프쉬케는 무엇인가? 영어 '사이크(psyche)'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말은 '정신' 또는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 로마 작가 아풀레이우스가 쓴 <황금 나귀>에 처음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아풀레이우스가 쓴 것인지, 기원전 2세기에 그가 지어서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날 어느 나라에 딸을 셋 둔 왕이 살고 있었다. 왕이 어질다는 소문과 딸들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던 것을 보면 참 살기 좋은 나라였던 모양이다. 세 딸 중 맏이와 둘째도 예사 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셋째이자 막내인 프쉬케는 이 세상의 가난한 언어로는 도무지 다 그려 낼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이 막내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먼 나라 가까운 나라 불문하고 수많은 나라의 오아자들이 다 몰려와 막내의아름다움을 한 번 보고 가기를 소원했다.

왕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나라 국민들에게도 막내 공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운 중에서도 큰 소원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막내 공주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최상급의 찬사를 공주에게 바쳤다. 공주가 받은 찬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아니고서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찬사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공주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신들이 살던 신전에도 발걸음이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는 사람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날이 감에 따라 신전 출입하는 사람이 줄어들다가 급기야는 제단조차 돌보는 이 없게 되어 향불은 꺼지고 제단에 먼지가 쌓이기에 이르렀다. 신들은 최고의 경의와 최상급의 찬사는 신들에게나 바쳐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경의와 찬사가, 때가 되면 죽고 죽으면 썩어야 할 팔자로 태어난 인간에게 겨누어지는 것을 보았으니,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그 향기로운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리만큼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송곳니가 멍석니 되도록 이를 갈았다. "가당찮구나. 이 아프로디테의 명예가 저 인간의 계집 하나에 빛을 잃어? 파리스의 판정을 제우스 대신까지 승인하지 않았던가? 제우스 대신이 보는 앞에서, 헤라와 아테나가 보는 앞에서 파리스는 종려 화관과 ' 미스 그리스'라는 명예를 바치지 않았던가? 오냐, 내 기어이 저 계집에게 앙갚음을 해서 분수에 넘치는 영광을 앙갚음의 여신 네메세스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가르쳐 주리라."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렀다. 에로스는 그렇지 않아도 장난이 치고 싶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저기 저 계집을 좀 내려다 보아라. 제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계집이 보이느냐? 프쉬케라는 계집이 보이느냐?"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 잘 들어라. 저 계집아이는 분수에 맞지 않게 아름답다. 저 계집아이 때문에 어미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니 네가 이 어미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 저 계집 아이가 받을 고통과 입을 상처가 클수록 이 어미의 기쁨 또한 클 것이다. 어쩌려느냐? 납화살을 쏘아 미움과 원망으로 한 세상을 살다 가게 할 테냐? 아니면 금화살을 쏘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수컷을 그리워하다 상사병으로 죽게 하려느냐?" "에로스의 일은 에로스에게 맡기세요. 다그친다고 되는 일인가요?" 에로스는 밖으로 나갔다.  아프로디테의 신전 앞뜰에는 단물이 솟는 샘과 쓴 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단물은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모자라는 것을 넘치게 하고, 빈 것을 차게 하는 물이고, 쓴물은 있는 것을 없게 하고, 넘치는 것을 모자라게 하고, 찬 것을 비게 하는 물이었다. 에로스는 두 개의 병에다 각각 쓴물과 단물을 넣어 화살통에 매달고는 금빛 날개짓도 가볍게 왕국의 도성으로 날아 내려갔다. 프쉬케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에로스는 쓴물 두어 방울을 프쉬케의 입술에 떨어뜨렸다. 이로써 프쉬케의 입술은 어떤 사내의 얼굴도 붉히게 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가엾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느낌에 버릇 들어 있지 않은 에로스는 금방 잊어버리고 프쉬케의 어께에 금화살촉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너무 거리가 가까워 화살을 활시위에 메울 필요도 없었다. 프쉬케는 화살촉을 느껴서 그랬던지 그 큰 눈을 뜨고 에로스 쪽을 바라보았다. 제 모습이 프쉬케 눈에 보일 턱이 없는 데도 에로스는 프쉬케가 눈을 뜨자 마치 어둡던 세상이 활짝 밝아진 것 같았다. 에로스는 한편으로 놀라고 또 한편으론 황홀해서 무심결에 프쉬케를 찌르지 못한 화살을 치운다는 것이 그만 제 손을 찌르고 말았다. 에로스가 프쉬케의 그 큰 눈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쓴물 한 방울로 제 손에 난 상처의 독을 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에로스는 그 생각은 못했다. 프쉬케가 가엾다는 느낌이 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제 손으로 벌인 장난을 거두어들인다고 프쉬케의 머리카락에 단물을 뿌려 그 아름다움을 거두기는 커녕 한층 더 아름다게 해주었다.

프쉬케의 침실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에로스는 그 전의 에로스가 아니었다. 금화살에 찔린 상처때문에 프쉬케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로스는 원래 나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안테로스(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진다. 프쉬케는 머리에 단물 방울이 묻은 날부터 나날이 아름다움을 더해 갔다. 그러나 입술에 묻은 쓴물 방울 때문에 나날이 더해 가는 아름다움으로도 아무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이란 눈은 모조리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좇고, 입이란 입은 남김없이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러나 왕자나 귀족은 커녕 하챦은 시정배들조차 지나가는 말로나마 청혼하는 일이 없었다. 위로 두 공주는 왕자들과 혼인하여 차례로 왕국을 떠났지만 프쉬케만은 까닭도 모른채 빈 방을 지키며 꽃같은 세월을 하는 일 없이 앞세우고 살았다. 왕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혹 프쉬케가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 시기를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로 사람을 보냈다.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처녀는 인간의 아내가 될 팔자가 아니다. 보아라, 올림포스 신들고 인간도 그 뜻을 거스릴 수 없는 요사스런 괴물이 산꼭대기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구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 아름다움이란 비와 같아서 모자라면 가뭄이고 넘치면 홍수라 하지 않더냐." 아폴론의 뜻을 전해들은 왕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딸을 불러다놓고 한숨의 쉬며 탄식했다

"애야,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느냐? 나는 곧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만 이 땅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너는 장차 어쩌려느냐?" 그러나 프쉬케는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 저도 상심하지 않을테니, 아버지도 제 팔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세요. 아폴론 신의 뜻이라면 피할수 없는 운명입니다. 저 바위산 꼭대기에 사는 괴물의 아내가 될 운명이라니, 제 발로 가렵니다." 왕은 눈물을 머금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공주를 바위산 꼭대기로 데려갈 준비를 하게 했다. 공주를 데리고 바위산으로 가는 행렬은 혼례 행렬이기보다는 장례 행렬에 가까웠고, 신부 프쉬케가 입은 옷은 공주가 결혼식날 입는 대례복이라기보다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에 가까웠다. 이윽고 행렬은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프쉬케는 산에 혼자 남았다. 제 발로 온 셈이기는 하지만 나이 어린 프쉬케에게도 괴물 만나기는 무서운 일이었다. 프쉬케는 오들오들 떨며 바위에 몸을 기대고는 한동안 그렇게 서있었다  그러자 인정 많은 서풍의 신 제퓌로스가  다가왔다. 제퓌로스는 프쉬케를 가볍게 들어 골짜기로 데려다 주었다. 꽃이 참 흐드러지게도 핀 골짜기 였다. 꽃향기 덕분에 마음을 가로앉힐 수 있게 된 프쉬케는 기운을 차리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키 큰 나무가 울울창창 들어서서 보기 좋은 숲이 있었다. 프쉬케는 숲으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궁전을 보았다. 어디로 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든 여느 구조물 같지가 않았다. 프쉬케의 눈에는 그 궁전은 올림포스 딸림 신들이 세운 궁전으로 보였다. 프쉬케는  넋을 놓고 궁전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물러서려고 해 봐야 물러날 곳도 없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나밖에 없다. 오냐, 더 물러갈 곳이 없으니 차라리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자.'  프쉬케는 용기를 내어 궁전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 그 안에서 보이는 것 가운데 프쉬케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둥근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황금 기둥이요, 황금 기둥이 놓인 바닥은 설화 석고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쌓여 있었다

프쉬케가 정신을 놓고 사방을 살피는데 어디에선기 귀에 선 목소리가 들여왔다. 둘러보아도 소리 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왕이시여, 보시는 것은 모두 여왕의 재물이며, 들으시는 것은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여왕을 받들 하인의 목소리입니다. 우선 안방으로 드시어 부드러운 거위 깃털 침대에서 쉬시고, 혹 내키시면 가까이에 있는 욕실을 찾아 몸을 닦으세요. 목욕을 마치시면 식탁은 정자에다 마련하면 어떠할까 합니다. 여왕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리 모실까 합니다." 프쉬케는 목소리만 들리는 시종의 말대로 깃털 침대에서 쉬고 욕실에서 몸을 씻은 뒤 정자로 건너갔다. 정자에 차린 맵시와 맛이 두루 산해진미라고 할 만한 음식이 있었고, 그 맛과 향이 두루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이라고 할만한 음료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가가 빚는 가락도 있었다. 프쉬케는 괴악하고 요사스런 괴물이라던 신랑을 한 번도 보지 못한채 그 궁전에서 신혼을 보냈다. 신랑은 늘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으로 본 적 없어도 손끝으로 가늠한 바 는 없지않았다. 신랑은 프쉬케가 더듬어 알기에 요사스런 괴물은 아닌 듯 했다. 어느 날 프쉬케는 신랑에게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 제 지아비가 어둠이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만져도 손끝에 걸리지 않을 테니 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손끝에 더듬어지는데 보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으신지요?" 신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더듬어 알 수 있되 보지 못하는 자를 우리는 장님이라고 하고, 보되 들을 수 없는 자를 우리는 귀머거리라고 하지요. 성한 사람도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남편의 음성은 뜻밖에 앳되었다. "모습을 보이시지 않는 까닭이 있으면 그거라도 가르쳐 주세요. 시중드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까닭이라도 알려주세요."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것이니 굳이 내 모습을 보려고 하지 마세요.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데 내 사랑이 믿어지지 않는 건가요? 믿어지지 않으면 내 곁을 떠나세요.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 사랑이 깃들지 못해요. 내가 그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지 삼가거나 섬기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프쉬케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본 마음을 되찾고 얼마간은 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랑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으나 딸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부모 생각, 언니들 생각이 프쉬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어느날 프쉬케는 또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저는 행복합니다. 다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할 뿐입니다. 시집 간 제 언니들에게 제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한 자락이라도 보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그릇은 무엇을 넣음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 냄으로써 채우는 것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대 언니들이 그대 사랑의 그릇을 줄여 놓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이예요." 프쉬케는 신랑의 반허락이 떨어지자 서풍의 신 제퓌로스에게 소식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제퓌로스는 산 넘고 물 건너 프쉬케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언니들을 궁전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프쉬케는 언니들과 오래 나누지 못한 정을 나누었다. 두 언니는 프쉬케의 시중을 알뜰살뜰 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하인들, 집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보이지 않는 악사들, 방방에 넘치는 엄청난 재물에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프쉬케에게 견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오두막이 아닌가?' 언니들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언니들은 그런 마음을 꼭 누르고 막내에게 이것저것을 닥치는대로 물었다. 뽐내고 싶은 사람에게 질문만큼 기다려지는 것은 없었다. "신랑은 뭘 한대?" "사냥 다녀." "자주 봐?" "응" " 밤늦게 사냥터에서 돌아오고 날새기 전에 사냥터로 돌아간다면, 그 모습을 네가 자주 보았을리가 없쟎아?" "..." 결국 프쉬케에게 신랑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실토를 받아낸 언니들은 막내의 가슴에 의혹의 맞불을 놓아 저희 가슴에 인 질투의 불길을 잡으려 했다. " 아폴론 신께서 저 신전의 예언자에게 맡겼던 뜻을 네가 설마 잊은 것은 아닐테지? 이 골짜기 사람들은 네 신랑이 '괴악하고 요사스런' 벰이라고 하더라. 좋은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넉넉하게 먹여 너를 살찌운 연후에 너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여러 말 하지 말고 등잔과 잘 드는 낫을 구하여 네 신랑 눈에 띄지 않을 곳에 숨겨두어라. 그리고 네 신랑이 잠든 사이에 살며시 일어나 등잔에 불을 켜서 골짜기 사람들 말이 옳은지 그른지 네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그리고그 사람들 말이 사실이거든 추호도 망설이지 말고 낫으로 그 목을 도려 버려라.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다."

처음에 프쉬케는 두 언니의 말에 쓴 웃음만 지었다.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나그네의 옷 같은 것, 마음에 이는 의심은 나그네의 옷에 내리는 가랑비와도 같은 것이다. 꿈길을 가는 것이 아닌 한 오래 맞으면 아무리 가랑비라도 마침내는 젖고 마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신랑은 나에게 그러지 않았는가?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고...' 프쉬케는 신랑이 하던 말을 떠올리며 의심을 삭이려 했다. 하지만 의심을 삭이려는 노력이 번번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의심은 프쉬케의 마음이 조금 헐거워지면 불쑥 고개를 들고는 했다. 의심은 오래지 않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신랑의 살갗은 부드러웠다. 신랑의 음성은 앳되었다. 대체 어떻게 생긴 분일까..' 호기심은 상사병과 같은 것이다. 상사병이 식욕을 떨어뜨리듯이 호기심 또한 채워지지 않으면 입맛을 떨어지게 한다. 프쉬케는 먹는 재미를 잃고 나날이 여위어 갔다.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프쉬케는 언니들이 가르쳐준 대로 등잔과 낫을 준비하고는 신랑이 들어오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냥 나갔던 신랑은 밤이 이슥해질 녘에야 밤이슬에 젖어서 돌아왔다. 프쉬케는 한 밤중에 살며시 일어나 등잔을 켜들고 신랑의 얼굴에 비추어 보았다. 산으로 올라오고는 처음 켜 본 등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뱀이기는 커녕 신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매력 있는 신이었다. 그의 금빛 고수머리는 눈과 같이 흰목과 진홍색의 볼 위에서 물결치고 어깨에는 이슬에 젖은 두 날개가 눈보다도 희고, 그 털은 보들보들한 봄꽃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프쉬케는 신랑의 풍채에 넋을 놓고 있다가 등잔의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을 그만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만다. 아, 그렇다 그가 바로 사랑의 신 에로스였다. 에로스는 퍼뜩 눈을 뜨고 프쉬케를 노려보더니 검다 희다 말없이 그 흰 날개를 펴고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프쉬케는 에로스를 잡으려고 창 쪽으로 달려갔다가 그만 보람 없이 창틀에서 바닥 족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에로스는 잠시 날갯짓을 멈추고 프쉬케를 내려다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어리석어라, 프쉬케여.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것이오?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파국이오? 내가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리고 그대를 사랑했기 때문이오. 사랑의 그릇은 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라던 내 말의 이치가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던가요? 가세요. 그대에게 따로 벌을 내리지는 않겠어요. 사랑이 남아 있다면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 벌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오로지 영원히 헤어져 있을 따름이오. 의심이 자라는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지 못한다는 말을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던가요? 그래요. 의심이 자리잡은 그대 '프쉬케(마음)'에게 나 '에로스(사랑)'이 깃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소."

에로스가 밤하늘에 한줄기 빛을 그으며 날아가 버린 뒤 프쉬케는 한동안 땅을 치며 울었다 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손끝에 닿은 바닥은 설화 석고가 아니라 땅이었다. 프쉬케는 이상히 여겨 주위를 둘러 보았다. 궁전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은 어느새 황야의 맨 땅 위에 엎드려 있었다. 프쉬케는 두 언니를 찾아가 자기가 겪던 그 간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애기하면서 오직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두 언니는 함께 후회하고 슬퍼해주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기 딴 마음을 먹었다. '오냐, 그것이 과분한 분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화를 입었으니 내가 그 복을 다시 지어 보아야 겠다.' 두 언니는 날이 밝자마자 앞을 다투어 프쉬케가 살던 바위산을 기어올랐다. 산꼭대기까지 오른 두 언니는 제퓌로스를 불러 프쉬케가 살고 있던 그 궁전까지 실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제퓌로스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벼랑 위에서 뛰어내렸다. 제퓌로스가 있던 자리에서 비켜 버리자  자매는 천길 벼랑에서 떨어져 그 의롭지 못한 삶을 좀 일찍 끝내고 말았다. 프쉬케는 한 동안 정을 붙이고 살았던 신랑 에로스를 찾아서 온 그리스 땅을 다 누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로스가 신인지라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신들은 알테지만 프쉬케로서는 신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쉬케는 산을 넘다가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신전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누구의 신전인지 짐작할 도리도 없었다. 프쉬케는 신 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신의 신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이 있으니 반드시 임자가 있겠지. 그래, 이 신전에서 신랑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자. 신랑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랴? 신랑에게 내 지은 죄를 용서받는 길은 땀을 흘리고 수고를 들이는 길 밖에 없아.' 프쉬케는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 안에는 뜻밖에도 곡식 낟가리가 있었다. 낟가리 중에는 단으로 묶인 것도 있었고, 베어서 실어온 채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진 것도 있었다.  낫, 갈퀴 같은 연장도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프쉬케는 곡식과 연장들을 종류별로 고르고 나누어 제각기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한 상태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프쉬케는 어떤 신에게든 죄를 얻었더라도 믿음으로 덕행을 쌓으면, 등을 돌렸던 신도 다시 돌아앉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에로스를 잃고 방황하며 나름대로 겨눈 가늠이고 헤아린 짐작이었다. 과연 그랬다. 그 신전은 다름 아닌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신전이었다.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프쉬케가, 신전 제단의 휘장 뒤에서 여신이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데메테르는 프쉬케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네가 복을 지었다. 내 비록 아프로디테의 저주에서 너를 풀어줄 힘은 없으나, 여신의 분노를 삭일 방도쯤이야 어찌 일러 줄 수 없겠느냐. 네 신랑이었던 이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었음을 네가 알았느냐? 어서 가서 여신의 손에 네 몸을 붙이고 겸손과 순종으로 용서를 빌어라. 인간과 금수와 초목 중에 인간만큼 신을 노엽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인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돌아앉은 신을 다시 돌아앉힐 수는 없다." 프쉬케는 데메테르가 가르쳐 준대로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찾아갔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프쉬케가 문안을 여쭙기도 전에 꾸짖기부터 한다. " 이 하찮고 믿음이 적은 것아, 네가 신을 섬기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았느냐? 네 신랑은 내 말을 귓가로 흘려고 너같이 하찮은 것에게 사랑을 기울이더니 어깨에는 화상, 가슴에는 상처를 입고 돌아와 몸져 누웠다. 참으로 밉살스럽고 비윗장이 뒤틀리는 것아, 내가 이제 부터 너를 시험하리라."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를 신전의 곳간으로 데려갔다. 신전의 곳간에는 비둘기의 모이가 될 밀, 보리, 기장 살갈퀴, 볼록콩 등이 섞인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네가 데메테르에게 길을 물어 내게로 왔으나, 내가 데메테르를 탓할 수는 없다. 자 여기 있는 곡식을 종류별로 고르되 한알도 남김없이 골라 무더기로 각기 쌓아 놓아라. 저녁때가 뙤기 전에 끝마치지 못하면 네 입에 들어갈 것은 하나도 없다." 프쉬케는 그 엄청난 일감에 기가 꺾여 손도 댈 엄두도 못하고 망연자실 앉아 눈물만 떨구었다. 에로스는 비록 프쉬케의 철없는 행동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대로 프쉬케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다. 에로스는 프쉬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들판의 임자인 뮈르미도네스에게 가서 프쉬케를 도와주라고 했다. 뮈르미도네스는 '개미떼'라는 뜻이다. 개미왕은 에로스의 명에 따라 부하를 이끌고 신전 곳간으로 갔다. 개미떼는 차 한 잔 끓여서 마실 만한 시간 동안 낱알을 종류별로 골라 각각 있어야 할 곳에 말끔히 정리했다. 아프로디테는 저녁 무렵에야 신들의 잔치에서 돌아와 앙칼진 목소리로 프쉬케를 꾸짖었다. 장미꽃 화관을 쓰고 호령하는 여신의 입에서는 향긋한 넥타르 냄새가 풍겨왔다. " 앙큼한 계집이로구나. 네가 일은 잘했다만, 나는 네 일 솜씨를 본 것이 아니고 내 아들에게 아직 너를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신은 저녁 끼니로 검은 떡 한 조각을 던져주고는 프쉬케를 곳간에 가두었다. 다음날 아프로디테는 또 하나의 일감을 주었다. "저기 숲, 물가로 길게 나앉은 숲을 보아라. 가면, 주인 없는 양떼가 있을 것이다. 가서 보면 알 테지만 털이 모두 금빛이다. 냉큼 가서 한 마리 한 마리의 털을 한 줌씩 뽑고 이것을 모두 모아 오너라. 한 마리라도 빠뜨리면 경을 칠 줄 알아라."

프쉬케는 물가로 내려갔다. 하지만 양의 수가 너무 많았다. 며칠동안 뽑아도 다 뽑을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고 있는데, 강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강의 신이 갈대를 흔들면서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모진 시험에 걸리신 아가씨, 이 강을 건너려고도 마시고, 저 무서운 양떼에게 다가갈 생각도 마세요. 떠오르는 해의 정기를 받고 있는 동안에는 저것은 여느 양이 아니라 인간을 뿔로 찌르고 발길로 걷어차는 무서운 짐승이랍니다. 그러니 한낮의 태양이 양떼를 나무그늘로 보내면 내가 양떼를 그 그늘에서 쉬게 할테니 가만 있기나 하세요. 제가 도와 드리지요.해질녘이 되거든 다시 이리 나오세요. 그러면 덤불과 나무 둥치에 양털 견본이 가득 걸려 있을테니, 그것을 거두어 가시면 됩니다." 강의 신의 도움으로 프쉬케가 양털을 거두어 갔지만 아프로디테의 앙칼진 호령은 여전했다. "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아느냐? 한번 눈 밖에 난 것은 미운 짓을 해도 미워지고, 예쁜 짓을 하면 더 미워지는 법이다. 내 너에게 도 일을 맡기겠다. 여기 상자가 하나 있으니 가지고 저승으로 내려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 제 주인이신 아프로디테 여신께서 얼굴 단장에 필요한 단장료를 조금 나누어주셨으면 하더이다. 몸져 누우신 아드님을 돌보시느라고 그 아름답던 얼굴이 조금 수척해시졌다고 하더이다.' 알겠느냐? 한 자 한 획도 틀림없이 전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신들의 잔치에 나가야 한다 . 네가 단장료를 가져와야 그걸 얼굴에 바르고 갈 수 있을테니. 심부름에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심부름꾼은 주인이 하는 말을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고 가야 했다. 프쉬케는 그제야 죽을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제 발로 걸어 저승에 간다는 것이 곧 죽는 것임을 프쉬케가 모를 리 없었다. 프쉬케는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있는 첨탑으로 올라가 거기에 뛰어내리는 것이 곧 저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프쉬케가 막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형상이 없는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 번 신들의 가호를 입은 그대가 이렇게 목숨을 끊어 이제껏 도와주던 신을 슬프게 하고 이제껏 미워하던 신을 즐겁게 해서야 되겠는가.' 목소리의 임자는 이어서 저승 가는 길, 저승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 옆을 무사히 지나가는 법, 그리고 되짚어오는 길을 소상하게 일러 주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페르세포네가 그 상자에 단장료를 넣어 주거든 고이 품고 나오되, 절대로 뚜겅을 열어봐서는 안된다. 그대는 인간이다. 여신들의 단장료를 너무 궁금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라." 프쉬케는 그 목소리 임자 덕분에 무사히 저승에 이르러 페르세포네를 배알할 수 있었다.  프쉬케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말을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전하자 페르세포네가 말하였다. "나와 아프로디테 여신 사이에는 풀어야 할 감정의 매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찮은 것으로 내 속을 보이고 싶지 않구나." 이윽고 상자는 뚜껑이 닫힌 채 페르세포네의 손에서 프쉬케의 손으로 넘어왔다. 프쉬케는 가던 길을 되짚어 다시 태양이 비치는 곳으로 나왔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어쩔 수 없는가, 아니면 여성은 어쩔 수 없는가? 프쉬케는 호기심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 감히 신들의 단장료를 가지러 저승에까지 갔던 내가 아니야? 내가 고생을 사서 하는 뜻은 다 신랑을 찾고자 함인데, 단장료의 힘을 빌려 신랑의 눈길을 조금 끌고 싶어하는 것을 누가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것인가? 얼굴을 단장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이자 권리 아니던가?'

프쉬케는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단장료가 아니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단장료가 아니라 잠의 씨였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가 된 것도 다 아프로디테와 그 아들 에로스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그때 자기가 당한 것을 앙갚음하느라고 상자에다 단장료 대신 잠의 신 휘프노스에게서 얻어 둔 잠의 씨를 넣어서 프쉬케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잠의 씨들이 일제히 나와 프쉬케를 쓰러뜨렸다. 저승의 잠에 떨어진 프쉬케 옆에는 초목도 자라기를 멈추었으니, 이제 프쉬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프쉬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에로스는 나비 편에 그 소식을 듣고는 급히 그곳으로 날아갔다. 에로스는 신이어서 프쉬케를 덮친 잠의 씨를 모두 거두어 다시 상자에 넣을 수 있었다. 잠의 씨 수습이 끝나자 에로스는 화살 끝으로 프쉬케를 건드렸다. 프쉬케가 깨어나자 에로스는 부드럽게 꾸짖었다. "분수를 몰라서 신세를 망치고 의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만고의 고생을 사서 하더니, 이제 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이 꼴이 되다니... 어서 일어나 내 어머니 신전에서 기다리세요. 나는 다녀올 곳이 있으니..." 에로스는하늘을 가르는 화살처럼 올림포스로 날아가 제우스 대신에게 프쉬케의 죄를 용서해 줄것을 탄원했다. 제우스 대신은 에로스가 어느새 훤칠한 청년이 되어 제 각시를 걱정하는 것을 어여삐 여기고, 아프로디테에게 청했다. " 신들도 의심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데, 한갓 사람이 그걸 어떻게 다 이길 수 있겠어요.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대가 인간들의 어려운 사랑의 끝을 아름답게 맺어 주듯이 그대의 아들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도 그 끝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어요. 이는 내가 바라는 바요." 아프로디테는 다 자란 아들을 쓸쓸한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쓸쓸한 눈길로 바라본 것은 아들이 드디어 자기 슬하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우스 대신은 발빠르기로 유명한 헤르메스를 보내어 프쉬케를 올림포스로 데려오게 했다. 프쉬케가 오자 제우스 신은 신들의 음식과 신들의 술을 몸소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마음이여, 이 것을 먹고 마시어 내가 베푸는 불사의 은혜, 영원히 사는 은혜를 얻으라. 네가 설 자리를 네가 든든하게 다지고 지혜로써 너를 지켜라. 너는 이제 불사의 몸이 되었으니 신랑 에로스도 이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인즉, 이 혼인은 영원하다." 에로스와 프쉬케는 이로써 하나로 맺어졌다. 아프로디테가 육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사랑의 여신)'라고 불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프로디테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보라, 그 아들인 에로스는 '프쉬케(마음)'을 사랑하여 마침내 사랑을 한 단계 드높이지 않았는가? 마침내 인간이 본받아야 마땅한 사랑의 본보기를 보이지 않았는가? 에로스와 프쉬케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이 딸의 이름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기쁨'이다. '사랑'과 '마음'이 짝을 이루니 그 딸이 '기쁨'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출처 : 미술관 옆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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