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본 히라도 하모사시 성당, 다비라 성당

성지순례/필리핀,중국,아시아,일본 등

by baesungsoo 2007. 5. 16. 10:51

본문

히라도 다비라성당       (출처- http://paxkorea.co.kr)

 

히라도 다비라성당

 

히라도 다비라성당

 

히라도 다비라성당 스테인드글라스

 

히라도 다비라성당 묘지

 

히라도 다비라성당 묘지

 

히라도 다비라성당

 

히라도 하모사시성당          (출처- http://paxkorea.co.kr)

 

히라도 하모사시성당

 

히라도 하모사시성당

 

히라도 하모사시성당

 

히라도 하모사시성당

 

히라도


일본 최초의 해외무역항로 대륙과 일본의 교류거점으로 번영을 누린 히라도는 동서 문화의 이국적인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진정한 역사를 만끽할 수 있는 고장이다. 히라도는 역사적인 국제교류 도시이다. 옛부터 한반도와 대륙과의 무호로써 번영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16세기에 기독교가 이 곳에 전해진 이후, 유럽의 문물이 많이 들어왔으며 아시아와 유럽이 혼연일체가 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번영하여왔다. 또한 기독교가 금지됨에 따라 신분을 감춘 카톨릭신자와 순교자들의 수많은 애한이 서려있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히라도의 역사를 애환과 낭만으로 물들이고 있다. 1592년부터 일어난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 히라도에서도 많은 파병이 있었으며, 한일 양국의 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적 사실도 남아있다. 영주 마츠우라씨는 귀국시에 조선도공 등, 약 100명을 데리고 와서 히라도야키라는 도자기 문화를 열어 조선문화를 도입하였다.


히라도와 서구제국


히라도의 독특한 문화는 서구제국과의 깊은 관계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1550년에 처음으로 포르투갈 배가 입항하여 무역항으로서의 히라도가 발전하면서 약 90년에 걸쳐 에스파니아(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등이 차례로 내항하여 당시의 히라도는 「서구의 도시」라고 불리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사비에르에 의해 전해진 가톨릭교는 무역관계가 얽힌 종교분쟁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대두시켜 결국은 1641년에는 네덜란드 상관(무역관)의 폐쇄와 함게 대외무역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막부의 통치하에 일본의 무역항은 나가사키항으로 제한받게 되었던 것이다.


카쿠레키리시탄(신분을 감춘 카톨릭 신자)


사비에르의 포교활동으로부터 37년이 지난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카톨릭 추방령」을 내렸다. 더욱이 토쿠가와이에야스의 금교령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어 카톨릭교 신자에게는 암흑 시대가 도래했다. 표면상으로는 불교도로 가장하여 신분을 감추고 신앙을 계속 믿는 사람들도 많아져 신분을 감춘 카톨릭 신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순교자의 희생이 앞을 다투었고 또한 끝까지 신앙을 지킨 신자들도 수없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히라도에서의 가톨릭교는 본래의 가톨릭교와는 달리 독특한 종교로써 지방문화속에 정착, 발전해 왔다.  (출처- http://paxkorea.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