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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여신전 (터키 레톤)

타종교신전/터키신전

by baesungsoo 2012. 7. 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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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톤 유적지 입구      (아래 사진 출처- http://toads.blog.me/20145071452) 

 

레토 신전 유적지 (레토, 아폴론, 아르테미스 신전)

 

크산토스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레톤은 그리스 여신 레토를 비롯한 3위의 신을 모신 리키아의 종교적 성소였다. 도시의 이름 '레톤'도 레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Letoon이라는 로마 알파벳을 영어식으로 읽어 '레툰'이라고 한글표기한 경우가 많으나 이 글자는 그리스 문자 'Λητῶον'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긴 것으로 고전 그리스어 발음으로는 레툰이 아니라 '레토온'에 가까운 발음이다. 라틴어로는 Letoum. 본래는 리키아의 토착 지모신(地母神)을 모시던 성소였는데 리키아가 그리스 문명권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화하면서 그 지모신이 그리스 여신 레토(Leto)로 대체되었고, 그에 더하여 레토가 낳은 쌍둥이 남매, 아폴론(Apollon)과 아르테미스(Artemis)까지 함께 모시게 되었다. 제우스가 레토를 범하여 임신하자, 그것을 질투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모든 나라의 왕들에게 레토가 아이를 낳을 곳을 제공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여기저기로 피해다니던 레토는 델로스(Delos) 섬에서 결국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 쌍둥이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이었으며, 이후 그 쌍둥이를 데리고 이곳 리키아로 와서 정착했는데, 레토는 이곳 레톤을, 아르테미스는 크산토스를, 아폴론은 파타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크산토스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며 1950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유물은 로마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유적 안내판

 

레톤 유적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266)

 

크산토스-레툰은 터키의 물라와 안틸리아 주(Provinces of Mu?la and Antalya)에 위치하며, 고대 리키아(Lycia)의 수도였던 크산토스는 리키아의 전통과 헬레니즘 영향이 융합된 곳이다. 특히 장묘 예술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곳의 비석에 새긴 명문은 리키아 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그들의 언어인 인도-유럽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레툰은 리키아의 종교 중심지이다. 크산토스는 이 지역에서 기원했거나 보존되어 있는 탁월한 장묘 유적, 그리고 두 장소에서 발견된 여러 비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대 리키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마우솔레움(Mausoleum; 묘)은 크산토스의 네레이드 기념비[Nereid Monument]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고대 리키아의 수도였던 크산토스와 이웃해 있으면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레툰 지역은 유명한 고고학적 복합지구로부터 8㎞ 떨어진 지점에 있다. 발굴은 영국인인 찰스 펠로스(Charles Fellows)에 의해 1838~1844년에 진행되었다. 리키아 인들은 기원전 1200년 무렵 히타이트 제국을 침범했던 ‘해양 민족’ 중 하나이다. 헤로도토스는 리키아 인들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민족으로 크레타로부터 왔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 민족 집단은 뚜렷하게 모순되는 2개의 개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그들은 전통을 매우 충실하게 따르는데 이것은 언어와 가옥 등의 전통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오랜 동안 리키아 언어를 보존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나무로 건축된 농가의 집과 헛간을 이용하고 있다. 이런 집과 헛간 구조는 리키아의 석조 장묘 예술에서 발견되는 유산들과 비교해볼 만하다. 두 번째로 이들은 헬레니즘과 로마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와 융합하였다. 시가지는 비잔틴 시기에도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여러 개의 바실리카(basilica; 법정이나 집회 등에 사용되는 큰 홀 형식의 공공건축)를 건축했다. 아랍인들이 마을을 폐허로 남기고 떠난 7세기까지도 바실리카들은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장구하고도 복잡한 역사는 훌륭한 유산을 많이 남겼으나 서로 이웃하고 있는 크산토스와 레툰 두 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은 시기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고대 리키아의 아크로폴리스를 포함하는 첫 번째 기념물들은 크산테(Xanthe) 강의 동쪽에 있는데 헬리니즘 시기와 비잔틴 시기 동안 새롭게 단장된 것이다. 북동쪽 모퉁이에 교회가 건축된 시기에는 강을 따라 성채 서쪽으로 방어 구조를 보강하여 요새화했다. 아크로폴리스의 정북 방향에는 로마의 광장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극장이 있다. 전 지역에 걸쳐 있는 리키아의 웅장한 장묘 기념물들은 크산토스의 고고 경관의 특징으로서 장관을 연출한다. 좀 더 분명치 않은 두 번째 고고학적 지대는 남쪽으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아치, 북쪽으로 헬레니즘적인 아크로폴리스 사이로 뻗어 있다. 이 지대는 시가지의 아래 부분에 있다. 레토 여신과 아르테미스 여신, 아폴로에게 봉헌된 레툰의 고고 유적지에는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건설된 분수의 잔해가 남아 있다. 이 분수는 성스러운 탄생의 기원을 가진 신성한 수원지로서 지어졌다. 기원전 358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Artaxerxes Ⅲ Okhos)의 재위 1년에 쓰인 명문이 레툰의 아르테미스 신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명한 명문은 리키아 어・아람 어・그리스 어 등 3개 언어로 쓰여 있었으며 크산토스와 레툰에서 발견된 리키아어로 쓰인 가장 길고도 중요한 문장이다. 이 문자의 대부분은 바위에 또는 커다란 단일 암석에 새긴 것이다 보니 커다란 바위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여 오랜 세월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명문이 새겨진 바위는 독특한 인도-유럽어의 주요 기념물이다. 이곳의 바위 예술이 있는 무덤들, 기둥 무덤들, 기둥처럼 쌓은 석관 등은 장묘 건축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 준다. 크산토스와 레툰에 풍부한 일련의 리키아식 무덤들은 기원전 6세기에 리키아에서 발생한 문화적 적응의 성공적인 사례를 이해할 수 있는 증거이다.

 

레톤 유적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266)

 

레톤 유적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266)

 

매표소 쪽에서 바라보는 레톤 유적 전경.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은 비잔티움 시대의 교회 유적 일부이다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위에서 바라보는 레톤 유적 전경  

 

유적의 상당 면적이 물에 잠겨 있다.        (아래 사진 출처- http://toads.blog.me/20145071452) 

 

유적의 상당 면적이 물에 잠겨 있다.

 

유적의 상당 면적이 물에 잠겨 있다.

 

유적의 상당 면적이 물에 잠겨 있다.

 

레토 여신전, 오른쪽 작은 신전은 아르테미스 여신전, 왼쪽 큰 신전은 레토 여신전

 

레토 (Leto)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女神)으로 제우스(Zeus)의 사랑을 받았으나 헤라(Hera)의 질투로 아이를 낳을 곳이 없어 떠돌다가, 델로스(Delos) 섬에서 쌍둥이인 아폴론(Apollon)과 아르테미스(Artemis)를 낳았다. 로마 신화의 라토나(Latona)에 해당한다. 레토는 리키아 여신인 라다(Lada)와 동일시되었던 듯하며, 다산(多産)의 여신과 쿠로트로포스(어린이들의 양육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르테미스와 아폴로는 어머니 레토를 여러번 위기에서 구해주었고 그녀의 명예를 지켰다. 레토를 강간하려한 한 티탄을 아르테미스(일설에 의하면 아폴론)가 화살을 쏘아 죽였다. 테베의 여왕 니오베는 자신은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이 있는데 레토에겐 고작 아들 하나 딸 하나밖에 없다며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각각 니오베의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을 독화살로 쏘아 죽였다. 비탄에 빠진 니오베는 돌이 되었다.

 

아폴론의 어머니, 제우스의 아내, 다산 신

 

그리스의 다산의 신이다. 티탄족 신(神)인 코이오스(Coeus)와 포이베(Phoebe)의 딸이며,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이다. 로마 신화의 라토나(Latona)에 해당한다. 그녀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출산할 때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떠돌아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다 하게 된다.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자기가 낳은 아이들보다 레토가 낳을 아이들이 더 위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나라에 레토를 받아들이지도 말고, 출산 장소를 제공하지도 말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나라들이 임신 중인 티탄족 여신인 레토의 커다란 몸집에, 혹은 앞으로 태어날 신들에게 겁을 먹어 레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신화도 있다. 그러나 출산할 때가 임박한 것을 안 제우스가 북풍의 신 보레아스(Boreas)를 시켜 레토를 포세이돈에게 데려가게 한다. 포세이돈은 레토를 아직 육지가 되지 못하고 바다에 떠있는 섬에 불과했던 델로스섬으로 데리고 간 다음 높은 파도를 일으켜 섬을 태양으로부터 가리게 한다. 이 섬에서 헤라와 조산(助産)의 신 에일레이티아를 제외한 모든 신들이 9일 동안 레토의 수발을 든다. 그리고 신들은 선물을 준비하여 이리스를 에일레이티아에게 보내 헤라 모르게 레토가 아폴론을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쌍둥이 신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은 레토는 후일 이 섬에 아이들이 자기 신전을 세우리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 포세이돈은 굵은 기둥으로 델로스섬을 해저에 단단하게 고정시켜 육지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두 신이 각각 다른 섬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도 있다. 즉, 아르테미스는 오르튜기아(메추라기 섬이라는 뜻)에서 태어났고, 그런 다음에 아폴론이 델로스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레토 여신

 

아폴론 신전에서 바라보는 아르테미스 신전(앞쪽)과 레토 신전(정면 뒤쪽).

 

세 신전 중 가장 큰 레토의 신전 터

 

레토 신전 밑바닥에 복원된 모자이크화.          (아래 사진 출처- http://toads.blog.me/20145071452) 

 

앞쪽이 레토 신전, 멀리 기둥이 서 있는 것이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 안내비          (아래 사진 출처- http://toads.blog.me/20145071452) 

 

아폴론 신전 뒤쪽

 

아폴론 신전 전면

 

 아폴론 신전 전면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 

 

어머니 레토와 쌍둥이 남매 아폴론을 모신 신전 사이에 끼어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

 

발굴중인 레톤 유적지          (출처- http://toads.blog.me/2014507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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