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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 여 신전 (에베소 셀죽)

타종교신전/터키신전

by baesungsoo 2013. 8. 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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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 신전 터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48

 

고대에 아르테미스 여신은 추앙을 받았고, 덕분에 에베소는 많은 성지 순례 객들의 방문을 받았다. AUGUST 한 달은 성스러운 날들로 인정되었고 종교적인 행사가 치루어졌다. 지금은 127개의 기둥 중 단 하나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하나의 기둥은 1972년에 여러 개의 돌을 모아 원래의 높이 대로 세워졌다 아데미 여신은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신성시 하였던 신으로 처음에는 킬벨레 (Kylbele)라 불리웠다. 이 여신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로마와 메소포타미아 및 아라비아에서도 섬기었다. 아랍인은 '라트'로, 이집트인은 '이시스'로, 그리스인은 아르테미스(사냥의 여신), 로마인은 '디아나'로 불렀으며 이오니아인들이 '아데미'라 불렀다. 처음 킬벨레로 불리울 때는 목신 상이었으며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이오니아 문명과 함께 아데미로 이름이 바뀌었고 땅과 다산을 상징하였다.  아데미 신전은 고대 칠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서 헬레네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이었으며 최초로 완전히 대리석으로 된 건물이었다. 이 신전은 일곱 번이나 파괴되었으나 항상 같은 위치에 재건되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해변에 지어졌으나 후에 항구가 매립되어 지금은 바다에서 5km 떨어져 있다. 고대의 신전은 55 x 110 m 크기로 이오니아 양식에 따라 건축되었으나 에베소에 살던 헤로스트라토스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자 불태웠다고 한다. 후에 신전은 당초의 것과 매우 유사하게 재건되었는데 55 x 105m 크기로 대리석으로 된 토대 석 위에 13층의 계단과 2.7m 높이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인들은 다이아나 신전이라고 부르는 아데미 신전은 1860년대에 영국인들이 이곳에서 신전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 폐허를 발견하기까지 무려 육 년이 걸렸다. 소아시아의 모신에게 바치는 이 신전은 주전 천 년경에 세워졌다. 이 신전은 주전 350년 알렉산더 대제가 태어나던 바로 그 날 밤에 불에 타 파괴되었다. 에베소 사람들이 이 신전을 재건했는데, 길이가 108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다. 그리고 건물 전체를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 가운데 이렇게 큰 건물로 처음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부서진 조각만 갖고는 이 신전의 모양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다른 두 신전들을 통해서 아데미 신전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데미 신전이 세워지기 100년 전쯤에 세워졌다. 건축학적으로 두 신전은 매우 흡사하게 지었다. 그러나 에베소에 있었던 신전은 그 규모가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46개의 기둥이 있는 반면, 에베소에 있던 아데미 신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기둥보다 두 배나 큰 기둥들이 127개가 있었다. 36개의 기둥의 기단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지름이 2미터가 넘는 이 기둥 받침 하나가 소장되어 있다.  

 

아데미 신전 터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48

 

 에베소 셀죽 아데미 여신전 터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5539)

 


아데미 신전 복원도, 120개의 대리석 기둥, 7대 불가사이중 하나

 

셀죽 아데미 신전 복원 모형물  

 


셀죽 신전터의 안내판

 


셀죽 시내 아데미 상징탑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아데미 여신의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이 있고,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다양한 짐승들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매년 5월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 여신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 따른다.축제의 행렬은 아데미 신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데미 신전에서 출발한 아데미 신상과 축제 행렬은 에베소 시의 동쪽에 있는 마그네시아 문을 통해 입성하고, 동방 체육관과 시장, 음악당을 지나서 에베소 시청에 이른다. 에베소 시청 앞에는 또 하나의 아데미 여신상이 밖을 향하여 서 있는데 두 개의 여신상이 만나게 되면 군중들의 열광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때, 에베소의 총독은 관저에서 나와서 아데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총독의 인사를 받은 아데미 여신상은 크레테 도로를 지나 셀수스 도서관을 거쳐 에베소 광장에 이른다. 광장에서 왼쪽 방향으로 항구대로를 지나 부두에 이르게 된다. 부두에 이르면, 드디어 소들을 바치는 희생 제사가 드려진다. 남자 사제들이 24마리의 황소 고환을 잘라 아데미 여신의 목에 걸어 주면, 군중들의 열광인 함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따라 춤을 추고, 도살된 소들이 제단에 올려지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데미 축제가 무르익게 된다.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아데미 여신은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신성시 하였던 신으로 처음에는 킬벨레 (Kylbele)라 불리웠다. 이 여신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로마와 메소포타미아 및 아라비아에서도 섬기었다. 아랍인은 '라트'로, 이집트인은 '이시스'로, 그리스인은 아르테미스(사냥의 여신), 로마인은 '디아나'로 불렀으며 이오니아인들이 '아데미'라 불렀다. 처음 킬벨레로 불리울 때는 목신 상이었으며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이오니아 문명과 함께 아데미로 이름이 바뀌었고 땅과 다산을 상징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고대 에베소 아데미 여신전

 

제라쉬 아데미신전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요르단 암만의 제라쉬는 746년 대지진에 의해 순식간에 폐허가 된 유적지이다. 기원전 6천년경 석가시대의 유물이 지금도 주변에서 발견된다. 제라쉬의 중요한 역사적 유물은 헬레니즘 문화의 유산이다. 그 이후 대상도시로 번창하여 4세기에는 기독교 문화가 유입되고 교회를 건립했으며 현재 14개의 교회 유적이 발굴되었다. 광장과 통로 양변에 원주가 하늘을 찌를 듯이 장엄하게 서있는 것이 장관이다. 하드라누스 황제의 개선문은 성벽을 필두로 좌우에 석조물이 이어지지만 거의 파괴되어 웅장했던 참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요르단 현지인들도 이 장대한 유적을 감상하기 위해 방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뜨거운 직사광선을 차단하기 위해 차도르를 쓰고 석조물의 사이를 걷는 모습은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신비로워 보였다. 유적 중앙의 대 신전은 제라쉬의 주신인 아르네미스를 모시는 곳으로 남북 11개, 동서6개 높이 13미터의 원주가 우뚝 솟아있다.

 

제라쉬 아데미신전  

 

사데 아데미 신전, 사데교회

 

주전 330년대 알렉산더대왕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된 이 신전은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을 위한 것이었다. 전면의 폭이 50m, 길이가 100m,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웅장한 규모이다. 지금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석주들이 도열해 있고 특별히 이오니아식의 석주 두 개가 18m나 되는 높이로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채 남쪽 끝 부분에 남아 있다. 사데는 허무스(Hermus)강 계곡 평야의 한 복판에 있다. 그 평야 북쪽으로는 트몰루스(Tmolus)의 긴 산맥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맥에서 여러 구릉과 작은 산들이 톱니바퀴살 같이 뻗어나가고 있다. 그 산 줄기들은 각기 좁은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의 사데는 이들 산줄기 중 하나의 위에 있었다. 고도는 450m였다. 그런 위치 때문에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산맥의 양측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벼랑과 트몰루스 산맥이 만나는 그 곳에만 사데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것 마저도 경사가 급하고 험준하였다.   고레스왕은 사데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크로이수스와 사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데사람들을 가리키며 고레스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목숨이다.”  고레스는 14일간을 포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에“사데성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 히에로에데스(Hyeroeddes)라고 불리는 한 군인이 사데성의 발포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사데 군병의 한 명이 실수하여 자기 철모를 성벽 총구 너머로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찾으려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히에로에데스는 그 곳에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바위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일단의 페르샤 군인들이 그 바위의 갈라진 틈바구니를 통해 사데성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포대 위에 도달했을 때 그 곳에는 보초병 하나 없었다. 사데 사람들은 발포대에 보초가 깨어서 경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다 잠자고 있다가 사데는 함락된 것이다

 

 사데 아데미 신전 기둥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레툰 아데미 신전

 

레툰 고대 도시는 쌍둥이로 태어난 아폴로 신과 아르테미스 여신의 어머니 레토를 기념하여 이름 지워진 도시이다.

 


버가 아데미 여신전


버가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인 성읍 여신 신전은 아직도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르테미스 페르가이아’(Artemis Pergaia)가 동전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헬라화 된 아르테미스, 또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와 닮은 우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의 신전은 성읍 부근의 언덕에 있으며, 도망자를 숨겨 둘 수 있는 곳으로 인정되어 있었다. 다른 성읍들도 이 여신에 대한 제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 여신과 그 여신에 대한 축제가 하나의 유품이 되었다. ‘구걸승’들이 그녀의 의식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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