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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석굴 (중국 산서성)

타종교신전/불교사원

by baesungsoo 2005. 5. 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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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강석굴 전경

 


석굴 입구

 


석굴 내 건축물

 

 

 


석굴 표시돌

 

운강석굴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chinamain.htm

 

중국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 서쪽 15km, 우저우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砂岩)의 낭떠러지에 조영(造營)된 중국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이다.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동쪽 언덕에 제1∼4동(洞), 중앙 언덕에 제5∼13동, 서쪽 언덕에 제14∼42동이 있다. 북위(北魏)의 역사서 《위서(魏書)》의 〈석로지(釋老志)〉에 따르면,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당시 문성제(文成帝)에게 석굴 조영을 주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담요 오굴(五窟)'이라고 불리는 제16동에서 제20동까지가 이때에 만들어진 석굴로,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다. 윈강석굴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은, 제20동의 노좌대불(露座大佛:높이 14m), 제19동의 대불(높이 약 17m)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彫像)에 초기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치졸하지만 소박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서방 양식이 풍부한 작풍이다. 담요 이후는 전통과 외래 양식이 혼합되면서 다양해졌다. 이 석굴의 융성기는 486년 전후였는데, 이 무렵의 불상은 중국 고대의 복제(服制)를 모방하였다. 신체보다도 복제 표현에 유의하여 조각하였고, 얼굴은 길며 매우 신비롭다. 북위불(北魏佛) 또는 육조불(六朝佛)이라 하여 후에 하나의 조상 기준이 된 것도 이 무렵의 불상이다. 이 석굴은 북위의 문화사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인도·중앙 아시아와의 문화적 교류 및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다.

 


석굴 모습, 마지막 석굴

 


석굴안의 불상들

 

 

<각 굴의 불상과 조각품들>

 

제 1석굴 (470-493년) 

 

제 3 석굴 대불

 

제5굴과 제6굴

 

운강석굴의 5,10,11,12,13굴 이 5개는 운강오화동이라 불리며, 명청대에 컬러플한 색채로 채색되었다.  5번 굴에는 17미터에 달하는 운강석굴 최대의 상인 부처좌상이 금빛 찬란한 모습으로 근엄하게 앉아있고, 이를 둘러싼 벽에는 수많은 불상이 중앙의 좌상을 바라보듯 조각돼 있다. 또 6번 굴에는 중앙에 15m 높이의 장방형의 탑이 천장까지 닿아 있는데, 동굴의 측면과 탑에는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한 석가보살의 모습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묘사한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강의 불상 이미지들은 아직까지도 간다라와 바미얀으로부터 전래된 서역, 중앙 아시아적인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앙 아시아나 서역의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곱슬머리, 얼굴 특징들을 갖고있다. 또한 부처 주변의 광배 역시 중앙 아시아의 것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인도의 꽃문양이나 시바의 들소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던 북위시대의 신들은 석가모니와 보살 등이 있다. 많은 주요 불상들은 지붕을 얹은 듯한 구조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 아직까지 금칠이 보존된 것들이 많다.

 

제8굴

인도를 기원하는 석굴사원이 중국에 전달되었다고 보여지나 하나의 증거로 시바신, 비슈누신(인도의 힌두신)이 새겨져 있다

 

제 9굴  (470-493년)   화려한 부조상은 청대에 색이 새로 칠해진 것이다. 오화굴五花窟이라 칭해짐.

 

11번 굴 불상과 벽화 

 

 


 


12굴

음악굴이라고 불리며, 중국 고대음악연구의 보물창고로 여겨진다


13굴 벽화와 불상

 


전체적으로 아주 컬러플하고 그 보존상태도 아주 훌륭하다. 그 중에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채색이 아름다운 남쪽벽의 불상들이다.


16굴부터 20굴의 불상

 

제 16굴 (460-465년)  

 

제16굴부터 제20굴은 고승 담요에의해 당시 북위의 선제先帝인 도무제道武帝, 명원제明元帝, 태무제太武帝, 태자황太子晃 4명의 황제의 명복을 빌고 문성제文成帝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5개의 석굴이다.

 

제 18굴 (460-465년)

 

높이 15.5m.제16굴부터 제20굴의 담요오굴曇曜五窟은 모두 15m정도의 높이와 외벽안에 놓여있는 스타일이다.

 

제 19-20굴 (460-465년)

 

제 20굴 운강노천대불

 

높이 14m. 운강석굴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원래는 제16~19굴처럼 외부의 암벽안에 있었지만 암벽이 무너져내려 지금처럼 외부로 노출된채로 있는 것이다. 석굴을 파서 부처좌상을 완성한 다음날 갑자기 석굴이 무너져 내렸는데 신기하게도 석굴 입구만 무너지고 부처 좌상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후에 오색찬란하면서 밝은 빛이 부처좌상의 머리 위에서 하늘로 부채 살처럼 퍼져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한층 제20굴의 신비로움이 더해진다. 운강노천대불은 태조 도무제를 상징하며 장대한 체구와 준수한 얼굴모습에서 제왕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제 20굴 운강노천대불

 

제 39굴

 

제21~53굴은 북위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만들어진 석굴로서 규모도 작고 다소 심플하다. 북위는 낙양천도후 그곳에서 용문석굴을 새롭게 조영한다. 사실 중국3대석굴중 용문과 운강석굴은 한족이 아닌 그들이 오랑캐라 칭했던 이민족이자 유목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북위北魏에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상당히 상당히 의외이다.

 

산서성 

 

중국 북부에 있는 성으로 동쪽은 허베이성(河北省), 남쪽과 남동쪽은 하난성(河南省), 서쪽으로는 산시성(陝西省), 북쪽으로는 네이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의 대부분이 평균고도가 해발 300~900m에 달하는 고원이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황허(黃河)강이 산골자기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의 산시성(陝西省)과 경계를 이룬다. 산서성은 중국의 두 개 문명이 만나는 지역에 놓여 있는데 북쪽은 기마 민족인 몽고족의 영향을 받았고, 남쪽으로는 황하문명의 접경지로 진나라 이후 남방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나라가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자 이 지역은 변방이 되었다. 지금의 산서성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해 공업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주요 볼거리로는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로 수려한 고산 자연풍경과 찬란한 불교 문화예술로 유명한 오태산(五台山)과 중국 고대 3대 석굴 예술 보고의 하나인 운강 석굴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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