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굴입구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루센스키롬 강 양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높이 50m가 넘는 절벽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이 자연 동굴을 이용해 수사들은 암굴 성당을 만들었다
주의 계곡 성당
1979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바노보는 교회, 성당, 수도원 밀집 지역으로 이들 교 등은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교회, 성당들은 13~1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특히 프레스코 장식이 뛰어나다. 중세 불가리아의 예술성을 증언하는 유적이다. 사진은 이바노보의 동굴 안에 만들어진 ‘주의 계곡 성당’이다. 13세기 초 무명 화가들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성인상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렸다. 루센스키롬 강이 흐르는 계곡 사이의 절벽에는 자연 동굴을 이용해 만든 수도원과 성당이 300개 남짓 남아 있다.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했던 성당 내부에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있는데, 여기에는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장면과 아이콘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심한 기상 조건 때문에 회화의 2/3가 파괴되어 버렸지만, 현재 남아 있는 몇몇 작품은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번영을 현재에 전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주의 계곡 성당’의 천장을 장식한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프레스코화. 이 프레스코화 대부분은 비잔틴 양식에 바탕을 둔 개성 있고 인간미 넘치는 타르노보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성당’ 북쪽 벽에 그려진 성당 모형을 들고 있는 이반 아센 2세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주의 계곡 성당’에 그려진 벽화의 배경에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군 ( Rock-hewn Churches of Ivanovo )
1979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바노보는 교회, 성당, 수도원 밀집 지역으로 이들 교 등은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교회, 성당들은 13~1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특히 프레스코 장식이 뛰어나다. 중세 불가리아의 예술성을 증언하는 유적이다. 사진은 이바노보의 동굴 안에 만들어진 ‘주의 계곡 성당’이다. 13세기 초 무명 화가들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성인상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렸다. 루센스키롬 강이 흐르는 계곡 사이의 절벽에는 자연 동굴을 이용해 만든 수도원과 성당이 300개 남짓 남아 있다.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했던 성당 내부에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있는데, 여기에는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장면과 아이콘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심한 기상 조건 때문에 회화의 2/3가 파괴되어 버렸지만, 현재 남아 있는 몇몇 작품은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번영을 현재에 전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불가리아 북동부, 루마니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루세 시를 스치듯이 흐르는 루센스키롬 강변 절벽에 만들어진 수도원은 폐허가 된 지 오래이며, 그 후로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이바노보 마을 사람들만이 성당 벽에 뚫린 구멍으로 ‘전능한 하느님’을 표현한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었다.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최대 규모의 이 암굴 성당들은 이름조차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성당을 ‘주의 계곡 성당’이라고 불렀다. 또 부호나 문자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서 ‘성스러운 문자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회화가 남아 있는 곳은 그냥 ‘성당’이라고 불렀다. 넓이가 제각기 다른 독방, 예배당, 성당 등 약 300개에 이르는 건조물은 몇 세기 동안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과 혹독한 기후, 산사태, 그리고 지진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은 동굴 5개 안에 만들어진 건조물뿐이지만, 이것은 바위산 암굴 성당의 극히 일부로 계곡 바닥에서 높이 20m 지점에 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성당들이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인공적으로 확장된 동굴에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고, 그 중 몇몇 그림이 13~14세기에 타르노보파 화가들이 그린 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된 뒤부터이다. 연구 결과, 힘차고 자유분방한 필치가 특징인 이바노보의 프레스코화는, 세련되고 표현이 풍부한 보야나의 성당 프레스코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라는 결론이 났다. 이 그림들은 11~12세기에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 전해진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인데, 제2차 불가리아 제국 시대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393년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이 땅을 점령하자,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던 도시 타르노보는 잿더미가 되고 비잔틴 양식의 회화 대부분도 파괴되었다. ‘자비로운 군주 차르에 대해서 불가리아 최고의 군주’라고 했던 이반 아센 2세의 치세 동안 발칸 반도의 불가리아 제국은 한없는 영화를 누렸다. 이반 아센 2세는 영토를 확장하고 번영을 가져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이 시기에 수사 요아힘은 그리스 정교의 수사들이 세속을 피해 정착하고 있던 이바노보의 동굴에 처음으로 성당을 지었다. 그 후 1235년경, 불가리아 정교회가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독립해 수도 타르노보에 독자적인 총주교구를 설치하자, 요아힘은 초대 총주교에 취임했다. 당시 이바노보는 암굴 안에 만든 유일한 성당은 아니었지만, 상류 계급의 순례자들과 더불어 많은 현자들이 이 곳을 찾아왔기 때문에 몇 년 후에는 가장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더욱이 아센 2세의 보호 아래서 요아힘이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성지는 순례지로서 크게 번영했다. 현자들은 금욕적인 신비주의 사상인 헤시카즘의 원칙에 따라 명상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내적인 대화를 통해 거룩한 평온으로 인도되는 길을 신도들에게 제시할 목적으로, 성당을 기도와 참배의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나라 곳곳에서 모여든 석공들이 조각한 현자들의 이름과 명문이 성당의 단단한 바위벽에 빽빽이 새겨져 있다. 수도자들은 대량으로 필사본을 제작하고 번역 작업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이바노보는 불가리아 제국의 종교와 문화 중심지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당시에는 성당의 장식 작업에 일류 예술가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평균 면적 20~30㎡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다양한 구상을 했다. 그 장식은 표정이 매우 풍부한 얼굴과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초상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부근의 경치를 배경으로 극적인 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그림으로 표현된 건축물에서 당시의 건축 양식이 얼마나 풍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나체 그림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나 다양한 특징을 가진 문체로 기록된 명문의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오래된 성당은 루센스키롬 강 오른쪽 기슭에 자리잡은 동굴 안에 있는 ‘주의 계곡 성당’이라고 추측된다. 성당 바닥이나 장식은 후진(Apse:성당 동쪽 끝의 반원형 부분)을 갖춘 단신랑의 성당을 연상시킨다. 성당의 벽면 위쪽에는 실물 크기의 성인이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선명한 색채와 뚜렷한 선을 사용한 ‘그리스도의 수난’이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불가리아어로 쓰여진 명문은 13세기 초, 즉 제2차 불가리아 제국 시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화는 ‘성당’의 전랑과 넓은 홀을 장식한 그림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인상이 그려져 있는 점에서 볼 때, 이 성당은 원래 세례자 성요한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북쪽 벽의 프레스코화에는 성당 모형을 들고 있는 아센 2세가 그려져 있다.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당한 뒤 이슬람 세력이 강해지자, 수도자들은 암굴 성당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은 눈깜짝할 사이에 헐어 무너져 내렸으며, 들판에 버려진 프레스코화는 눈바람과 비, 그리고 추위와 더위의 차이가 격심한 기후에 방치되어 시간의 흐름과 함께 2/3가 상실되었다. 그러나 프레스코화를 파괴한 것은 자연이나 정복자 오스만투르크인 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 정교의 신자들은 프레스코화에서 떼어 낸 작은 조각을 물에 녹여 마시면 눈병이 낫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성인의 눈을 �어 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곳에 남아 있는 모든 회화 작품은 불가리아를 포함한 발칸 반도 여러 나라의 적품들 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지금은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와 기념적인 건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에 쇠격자를 쳐놓았다
암굴입구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루센스키롬 강 양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높이 50m가 넘는 절벽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이 자연 동굴을 이용해 수사들은 암굴 성당을 만들었다
주의 계곡 성당
1979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바노보는 교회, 성당, 수도원 밀집 지역으로 이들 교 등은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교회, 성당들은 13~1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특히 프레스코 장식이 뛰어나다. 중세 불가리아의 예술성을 증언하는 유적이다. 사진은 이바노보의 동굴 안에 만들어진 ‘주의 계곡 성당’이다. 13세기 초 무명 화가들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성인상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렸다. 루센스키롬 강이 흐르는 계곡 사이의 절벽에는 자연 동굴을 이용해 만든 수도원과 성당이 300개 남짓 남아 있다.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했던 성당 내부에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있는데, 여기에는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장면과 아이콘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심한 기상 조건 때문에 회화의 2/3가 파괴되어 버렸지만, 현재 남아 있는 몇몇 작품은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번영을 현재에 전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주의 계곡 성당’의 천장을 장식한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프레스코화. 이 프레스코화 대부분은 비잔틴 양식에 바탕을 둔 개성 있고 인간미 넘치는 타르노보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성당’ 북쪽 벽에 그려진 성당 모형을 들고 있는 이반 아센 2세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주의 계곡 성당’에 그려진 벽화의 배경에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군 ( Rock-hewn Churches of Ivanovo )
1979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바노보는 교회, 성당, 수도원 밀집 지역으로 이들 교 등은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교회, 성당들은 13~1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특히 프레스코 장식이 뛰어나다. 중세 불가리아의 예술성을 증언하는 유적이다. 사진은 이바노보의 동굴 안에 만들어진 ‘주의 계곡 성당’이다. 13세기 초 무명 화가들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성인상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렸다. 루센스키롬 강이 흐르는 계곡 사이의 절벽에는 자연 동굴을 이용해 만든 수도원과 성당이 300개 남짓 남아 있다.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했던 성당 내부에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있는데, 여기에는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장면과 아이콘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심한 기상 조건 때문에 회화의 2/3가 파괴되어 버렸지만, 현재 남아 있는 몇몇 작품은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번영을 현재에 전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불가리아 북동부, 루마니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루세 시를 스치듯이 흐르는 루센스키롬 강변 절벽에 만들어진 수도원은 폐허가 된 지 오래이며, 그 후로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이바노보 마을 사람들만이 성당 벽에 뚫린 구멍으로 ‘전능한 하느님’을 표현한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었다.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최대 규모의 이 암굴 성당들은 이름조차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성당을 ‘주의 계곡 성당’이라고 불렀다. 또 부호나 문자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서 ‘성스러운 문자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회화가 남아 있는 곳은 그냥 ‘성당’이라고 불렀다. 넓이가 제각기 다른 독방, 예배당, 성당 등 약 300개에 이르는 건조물은 몇 세기 동안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과 혹독한 기후, 산사태, 그리고 지진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은 동굴 5개 안에 만들어진 건조물뿐이지만, 이것은 바위산 암굴 성당의 극히 일부로 계곡 바닥에서 높이 20m 지점에 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성당들이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인공적으로 확장된 동굴에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고, 그 중 몇몇 그림이 13~14세기에 타르노보파 화가들이 그린 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된 뒤부터이다. 연구 결과, 힘차고 자유분방한 필치가 특징인 이바노보의 프레스코화는, 세련되고 표현이 풍부한 보야나의 성당 프레스코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라는 결론이 났다. 이 그림들은 11~12세기에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 전해진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인데, 제2차 불가리아 제국 시대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393년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이 땅을 점령하자,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던 도시 타르노보는 잿더미가 되고 비잔틴 양식의 회화 대부분도 파괴되었다. ‘자비로운 군주 차르에 대해서 불가리아 최고의 군주’라고 했던 이반 아센 2세의 치세 동안 발칸 반도의 불가리아 제국은 한없는 영화를 누렸다. 이반 아센 2세는 영토를 확장하고 번영을 가져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이 시기에 수사 요아힘은 그리스 정교의 수사들이 세속을 피해 정착하고 있던 이바노보의 동굴에 처음으로 성당을 지었다. 그 후 1235년경, 불가리아 정교회가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독립해 수도 타르노보에 독자적인 총주교구를 설치하자, 요아힘은 초대 총주교에 취임했다. 당시 이바노보는 암굴 안에 만든 유일한 성당은 아니었지만, 상류 계급의 순례자들과 더불어 많은 현자들이 이 곳을 찾아왔기 때문에 몇 년 후에는 가장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더욱이 아센 2세의 보호 아래서 요아힘이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성지는 순례지로서 크게 번영했다. 현자들은 금욕적인 신비주의 사상인 헤시카즘의 원칙에 따라 명상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내적인 대화를 통해 거룩한 평온으로 인도되는 길을 신도들에게 제시할 목적으로, 성당을 기도와 참배의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나라 곳곳에서 모여든 석공들이 조각한 현자들의 이름과 명문이 성당의 단단한 바위벽에 빽빽이 새겨져 있다. 수도자들은 대량으로 필사본을 제작하고 번역 작업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이바노보는 불가리아 제국의 종교와 문화 중심지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당시에는 성당의 장식 작업에 일류 예술가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평균 면적 20~30㎡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다양한 구상을 했다. 그 장식은 표정이 매우 풍부한 얼굴과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초상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부근의 경치를 배경으로 극적인 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그림으로 표현된 건축물에서 당시의 건축 양식이 얼마나 풍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나체 그림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나 다양한 특징을 가진 문체로 기록된 명문의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오래된 성당은 루센스키롬 강 오른쪽 기슭에 자리잡은 동굴 안에 있는 ‘주의 계곡 성당’이라고 추측된다. 성당 바닥이나 장식은 후진(Apse:성당 동쪽 끝의 반원형 부분)을 갖춘 단신랑의 성당을 연상시킨다. 성당의 벽면 위쪽에는 실물 크기의 성인이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선명한 색채와 뚜렷한 선을 사용한 ‘그리스도의 수난’이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불가리아어로 쓰여진 명문은 13세기 초, 즉 제2차 불가리아 제국 시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화는 ‘성당’의 전랑과 넓은 홀을 장식한 그림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인상이 그려져 있는 점에서 볼 때, 이 성당은 원래 세례자 성요한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북쪽 벽의 프레스코화에는 성당 모형을 들고 있는 아센 2세가 그려져 있다.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당한 뒤 이슬람 세력이 강해지자, 수도자들은 암굴 성당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바노보의 암굴 성당은 눈깜짝할 사이에 헐어 무너져 내렸으며, 들판에 버려진 프레스코화는 눈바람과 비, 그리고 추위와 더위의 차이가 격심한 기후에 방치되어 시간의 흐름과 함께 2/3가 상실되었다. 그러나 프레스코화를 파괴한 것은 자연이나 정복자 오스만투르크인 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 정교의 신자들은 프레스코화에서 떼어 낸 작은 조각을 물에 녹여 마시면 눈병이 낫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성인의 눈을 �어 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곳에 남아 있는 모든 회화 작품은 불가리아를 포함한 발칸 반도 여러 나라의 적품들 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지금은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와 기념적인 건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에 쇠격자를 쳐놓았다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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