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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몰도비차수도원, 보로네츠수도원 외 (몰도바지방)

성지순례/동유럽(폴란드,루마니아)

by baesungsoo 2006. 1.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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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도비차 수도원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풍부한 벽화로 장식된 이 성당은 몰도비차 수도원의 중심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이 성당의 벽화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성서를 그림으로 해설하는 역할도 했다

 

몰도비차 수도원 성당이 있는 아이코노스타시스(성장)

 

보로네츠 수도원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건물에서 돌출한 지붕은 부분적으로나마 비와 눈, 그리고 햇빛으로부터 성당의 벽화를 보호한다. 보로네츠 수도원뿐만 아니라 다른 수도원에서도 이런 지붕을 볼 수 있다

 

보로네츠 수도원 벽화


1993년에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교회의 외벽이 15세기, 16세기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유럽에서도 독특한 양식으로 손꼽힌다. 이 유산은 몰도바 지방의 파트라우티, 후모르, 몰도비차, 아르보레, 보로네츠, 수체아바, 프로보타의 수도원 성당이 그 대상이다. 16세기 중엽, 보로네츠 수도원의 성당 남쪽 정면에 무명의 예술가가 그린 [이새의 나무] 그리스도교 미술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예수의 계보를 표현한 그림이다. 바탕의 푸른 색이 ‘보로네츠의 청색’이라는 수수께끼의 색깔이다

 

보로네츠 수도원 벽화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영광으로 충만한 수많은 성인들이 천국에서 살다]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보로네츠 성당의 서쪽 외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의 일부분이다

 

스체비차 수도원 성당


안타깝게도 세계유산에 등록되지 못했지만, 관광객에게는 인기 있는 곳이다. 성당의 북쪽 벽면에 있는 벽화 [천국의 사다리]에는 32단의 사다리를 경계로 오른쪽은 천국을, 왼쪽은 지옥을 묘사했다. 여기에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단자는 터키인의 얼굴로 표현되어 있다

 

후모르 수도원 성당에 있는 프레스코화의 인물상은 매우 독특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사는 주민의 전형적인 얼굴이다

 

몰도바 지방의 성당군


북몰도바 지방에는 유럽의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성당군이 있다. 이들 성당의 벽면은 안쪽뿐만 아니라 바깥쪽도 프레스코화로 뒤덮인 채 주위 자연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슈테판 대공과 후계자 페트루 라레슈공의 시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문화적, 정치적 투쟁은 수많은 장면에서 거듭 사용된 주제이다. 위대한 슈테판 대공-  1453년에 오스만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자, 예언자 마호메트의 깃발이 순식간에 동남유럽의 넓은 지역을 뒤덮었다. 그리스 정교를 믿는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 가운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던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몰도비아 공국의 전성기를 이룩한 슈테판 3세이다. 슈테판 3세는 투르크뿐만 아니라 폴란드나 헝가리의 침략도 저지하고 나라의 자치권을 지켰다. 그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대공’이라는 경칭이 주어졌다. 성전사의 전설에 따르면, 슈테판 대공은 새로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수도원이나 성당을 건립해 승리를 축하했다고 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민족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해지고 자기 나라의 문화에 긍지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북몰도바 지방에는 종교적 건축물이 잇달아 건설되어 중세 몰도바 미술의 가장 값진 유산이 되었다. 슈테판 대공 시대에 비잔틴의 여러 요소와 지방색이 융합해 몰도바 지방 특유의 양식이 생겨났다. 북몰도바 지방에 있는 성당은 길이 30m, 폭 15m 정도로 얇게 켠 목재를 이어 붙인 지붕이 얹혀 있어, 서유럽의 성당과 비교하면 대단히 간소한 느낌이 든다. 또 서유럽의 성당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데 비해 루마니아의 성당은 땅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이 시대에 제작된 루마니아의 예술 작품 가운데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뛰어난 작품이 많은데, 특히 건축물 내부와 외부를 벽화로 뒤덮어 마치 건물 전체가 성화인 듯한 성당은 훌륭한 걸작이다. 슈테판 대공은 “그리스도교 세계를 지키는 성문인 우리가 만약 함락된다면,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교황은 그에게 ‘성전사(聖戰士)’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 말에서 드러나듯 슈테판 대공의 의도는 변경이라는 몰도바의 위치를 역이용하여 몰도바의 교회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 즉 그리스도교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 동시에 위험을 미리 막는 수호자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었다. 슈테판 대공의 절실한 소원은 특히 파트라우티에 있는 수도원의 성십자가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보로네츠 최초의 수도원인 성게오르기우스 성당에 잘 나타나 있다. 파트라우티의 프레스코화에는 용감무쌍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전사를 이끌고 신의 적과 싸우는 장면이, 또 보로네츠에는 콘스탄티노플의 포위 상황이 [이새의 나무], [성인전], [최후의 심판]이라는 정형화된 종교적 모티프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어,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를 위협하던 위기를 연상시킨다. 비잔틴의 개념에 따르면, 모든 성당은 신이 창조한 우주를 반영하며 천상과 지상의 위계가 질서를 이루고 있다고 여겨진다. 성당의 궁륭 부분은 신의 세계를 상징하고, 궁륭 아래의 벽면에 그린 복음서나 성인의 생애를 표현한 장면들은 교화적 사명을 상징한다. 파트라우티의 [성당봉헌도]에는 슈테판 대공이 그리스도교의 모범이 되는 성당을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비잔틴 화가들은 장식을 풍부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드라마틱한 양식을 전개했지만, 몰도바의 예술가들은 지극히 단순한 표현 형태를 추구해 힘 있는 선과 선명한 색채를 탄생시켰다. 북몰도바 지방의 성당 벽화는 제2기 비잔틴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슬라브 국가들의 호화는 독자성이 있지만 비잔틴 회화의 연장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의 경계는 지리나 정치의 경계만큼 명확하지 않다. 콘스탄티노플의 포위를 드라마틱한 군상으로 묘사한 파트라우티의 프레스코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보로네츠의 벽화는 각각의 인물을 부각시켜 묘사하고 있다. 서쪽 외벽에 있는 [최후의 심판]에는 많은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제각기 개성 있는 모습과 몸짓이 표현되어 있다. 연옥 장면에서는, 대제사장 카야파 옆에 배신자 유다와 한눈에 터키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터번을 두른 사악한 얼굴의 인물들이 불길에 휩싸인 장면이 있다. 이 벽화들에서 두드러진 것은 ‘보로네츠의 청색’이라는 색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선명한 청색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직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다. 라피스라즐리(청금석) 가루를 섞는 방법도 성공하지 못했다. 슈테판 대공이 죽은 뒤 공국의 귀족 및 대공 측근들의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다가, 1527년에 페트루 라레슈가 군주 자리에 올라 더 많은 성당을 건설했다. 후모르 수도원의 성당 벽화를 그린 토마 데 수체아바는 [최후의 심판]에서 이탈리아의 프레스코 화가 안젤리코와 러시아의 성화 화가 루블로프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실적 필치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터키인과 타타르인을 묘사했다. 수체아바의 회화는 슈테판 대공의 치세에 정치와 전투적 의도로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북몰도바 지방에는 내벽과 외벽이 회화로 뒤덮인 성당이 12개나 있는데, 그 중에서 세계유산에 등록된 것은 파트라우티, 후모르, 몰도비차, 아르보레, 보로네츠, 수체아바, 프로보타의 수도원 성당이다. 모든 성당의 벽면이 주위의 자연과 일치된 듯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널리 알려진 스체비차 수도원 성당이 유네스코의 목록에서 제외된 것은 뜻밖의 일로서, 선명한 초록색 바탕의 이 성당 벽화는 북몰도바 지방의 숲 그리고 초원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이 성당의 벽화들은 대기 오염이나 폭풍우, 때로는 매우 높은 습도 때문에 크게 손상되었다. 1522년에 완성된 수체아바의 성게오르기우스 수도원 성당의 프레스코화는 20세기 초에 전면 복원되었지만, 다른 성당들은 1960년대 초가 되어서야 복원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는 페트루 라레슈공의 묘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531년에 건립된 프로보타 성당의 개수 작업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기술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1537년에 몰도비차 수도원 성당의 [성당 봉헌도]에 그려져, 불멸의 존재가 된 페트루 라레슈공은 비잔틴 황제의 장식품으로 치장하고 공국의 충성스러운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의 정치적인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라레슈공은 슈테판 대공의 서자였기 때문에, 가신인 귀족들로부터 확고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영웅 전설에서 영웅은 정교회의 대의를 위해 싸우는 충실한 전사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라레슈공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 관계를 여러 번 바꾸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어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싸웠지만, 얼마 뒤에는 오스만 제국과 조약을 맺고 오스트리아와 싸웠다. 1538년에 라레슈공은 퇴위되었지만, 3년 후에 오스만군이 그를 도와 옥좌를 되찾아 주었다. 그러나 1546년에 라레슈공이 다시 오스트리아와 새로운 조약을 맺고 오스만 제국에 대한 공납을 거부하자 오스만군의 분노가 폭발했다. 오스만군은 라레슈공을 완전히 실각시키고 공국의 패권을 가로챘다. 오늘날 몰도비차 수도원은 다른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라레슈공이 건설한 이 수도원에서는 그가 앉던 의자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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