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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정교회

성지순례/동유럽(폴란드,루마니아)

by baesungsoo 2006. 7. 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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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정교회       (블로그 > Tourism, Culture & Lohas for Meeting Planner)

 

폴란드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


폴란드가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하면서 새로운 국경선 지역에 약 4백만명의 정교회 신자들이 폴란드로 편입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벨로러시아 민족이거나 우크라니아 민족이었습니다. 초기에 폴란드 정교회는 모스크바의 총대주교 관구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92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청에 의해 자립적인 대주교구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현재 바르샤바의 대주교는 사바 좌하(座下)입니다


정교회(the Orthedox Church)


동유럽과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대한  일반적 명칭. 동방정교회, 그리스정교회, 그리스 러시아 정교회 등의 명칭으로  구분되어 불리기도 한다. 각 교회는 독립된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콘스탄티노플 총대 주교에게 수위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정교회는 다음 세  종류의 독립된 교회 전통으로 구분된다.

1.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및 예루살렘의 네  총대주교구로 이루어지는 최초의 동방교회 전통

2. 이들보다는 약간 늦게 형성된 러시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게오르기아 정교회 전통

3. 키프러스, 그리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및  알바니아 정교회 전통이 그것이다.

    여기에 핀란드, 중국, 일본, 미국 등지의 정교회도 독자적인 체제를 갖고 있으나 위의 세 전통에 비해 역사나직면에 있어

    뒤진다.

 

동방정교회의 역사


오늘날 '정교회'로 불리는 동방교회는 동로마제국(혹은 비잔틴 제국)의 교회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정교회는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미 2-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은 신학의 중심지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한 서방 교회가 4세기  이후 크게 발전하면서 점차 동방교회는 지도권을 잃었고  4-5세기 단성론 논쟁과 네스토리우스 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지역적으로도  소아시아 지역으로그 영향력이 축소 되었다. 9세기 이후 로마 교구와 콘스탄티노플 교구 사이에 로마교황의 권한 문제와 성상  숭배 문제로 인해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하여 결국 1054년 동 서 교회의 대분열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리용 공의회(1274), 플로렌스 공의회(1438-9) 등을 통해 동, 서교회의 화해가  시도되었으나 대부분의 동방정교회에서 이들 공의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다. 분열 이후 동방정교회는 북부로 선교를 확장했다. 이미 9세기 중반부터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 등 '슬라브의 사도들'을 동유럽에 파송하여 불가리아, 세르비아를 거쳐 러시아에 정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슬라부족 교회들은 콘스탄티노플교회와 독립된 민족교회로 성장하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교의 터어키 족에게 함락 당한 후부터 러시아교회가 정교회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 하였으나 콘스탄티노플 총대 주교에게 계속 수위권의  명예를 부여했다. 이후 정교회는 오토만 제국의 탄압을 받았고 20세기 이후에는 공산주의의 박해를 받았다.


정교회의 교리


정교회는 공의회에 최고 권위를 둔다. 그 중에도 1차 니케아 공의회(325)로부터 2차 니케아 공의회(787)에 이르는 7개 공의회를 교리와 신학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2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열린 공의회는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경의 가치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되었다. 정교회는 성서 외에도 니케아 신경을 그 신앙과 가르침의 토래로 삼는 것이다. 교회는 그 내용에 어떤 변경도 용납지 않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거룩한 예배와 그밖의 교회의 성무일도(아침, 밤 기도)에서도 신경을 낭송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신경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동방정교회의 특징


정교회에서는 로마 교황을 기독교의 수석 주교로는 인정하지만 이는 단지 교회 감독권에 있어 "여러 동등 자격자들 중의 우선권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교황의 절대 우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정교회에서는 평신도들에게도 설교와  영적 지도권을 허락하여 평신도들 가운데 유명한 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7성사를 인정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성사와 준성사를 엄격하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즉 수도 서원, 성수 축복,  사체매장 등의 준 성사적 의식에도 7성사와 거의 같은 비중을 둔다

동방정교회의 해외와 국내 활동


오랜 동안 서방교회와 단절되었던 정교회는 20세기말 대규모  그리스, 러시아의 이주로 인해 서유럽과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총대 주교는 20세기 초에 본격화된 에큐메니칼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대부분의 정교회들은 세계교회협의회에 참여하여 교회의 재일치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1961년 이후 단성론 교회 혹은 비칼케돈 교회와도 긴밀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898년 러시아정교회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러시아 황제의 명으로 암브로시우스, 니콜라이, 크라신 등으로 선교단이  조직되었으나 당시 한국내의 러시아 세력이 열세여서 니콜라이만 입국하였다. 1900년 크리산프, 요나스 등이 합류하여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 안에 교당을 설치하고 예배를 드렸으나 1904년 노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함으로써 러시아인들이  축축되었고 이후 러시아 정교회 한국 선교는 일본에 있는 정교회 지원을 받으며 명맥만  유지했다. 그러나 해방 후 6.25사변 중 참전한 그리스 군들을 통해 그리스 정교회가  새롭게 소개 되었고 그리스 정교회 관구에 소속되었다가  70년부터 뉴질랜드 정교회 대관구의 관할을 받고 있다         (기독교사전(기독교문사 刊) 등 참조   블로그 > 쉴만한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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