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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속의 여신 2 (케레스, 페르세포네, 크레타 대지모신, 아르테미스)

여성신,신화/그리스,로마

by baesungsoo 2008. 7. 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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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프랑스 1프랑 은화

 

케레스 ( 1887년 프랑스 1프랑 은화)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머리에 곡물과 꽃, 올리브, 참나무 줄기로 장식된 화관을 쓰고 있는 이 여신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곡물의 여신 '케레스'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주화의 진정한 매력은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매우 아름다운 도안이다. 여신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원형을 손으로 하나하나 깎고 다듬어서 만들어 졌다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어디까지나 주관적 관점이지만 미국 모건 달러에 나타나 있는 여신이 조금 비대해 보인다면 위 주화의 여신은 대지의 여신 이미지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적당한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 처럼 아주 작은 차이에서도 미적 차이가 나타난 다는 것을 보면 인간의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즉 미려한 선의 흐름에 대한 '미적' 선호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 처럼 이성의 건강미에 대한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성의 배우자를 얻기 위한 유전적 결정으로서 말이다.

 

1901년 과테말라 1레알

 

케레스    (1901년 과테말라 1레알)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위 주화의 첫 번째 사진을 보면 여신이 한 손에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를 들고 있다. 고대 로마의 주화에서라면 이러한 도상의 여신은 당연히 ‘케레스’라고 확정 지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를 케레스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고대에서부터 반드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도 자유나 정의 등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의인화 된 신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저 ‘풍요의 여신’ 정도로 하더라도 이상 할 것은 없다. 무엇 보다 그녀를 케레스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은 그녀의 다른 한 손에는 ‘평등’을 나타내는 양팔 저울이 들려 있기 때문이다. 신화 속에서나 도상에서나 케레스에게 평등의 의미가 부여되었던 적은 없다. 그럼 다시 그녀의 오른 손에 들린 코르누코피아로 시선을 옮겨가면 말 그대로 그 뿔 안에서 온갖 식물과 과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페루와 같은 국가의 문장에서 코르누코피아가 쏟아내는 것이 황금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풍요의 뿔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대지에 풍요와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전설에서 잃어버린 성배가 황폐화 된 왕국에 풍요와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모티브가 이러한 코르누코피아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다른 한편으로 풍요의 여신의 손에 들린 코르누코피아는 그녀의 죽은 자식들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기도 하다. 케레스 (데메테르)를 비롯하여, 키벨레, 아프로디테 모두 자식이자 연인인 아티스와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잃었다. 풍요의 여신 중 자식을 잃지 않은 여신은 이시스가 유일하지만 그녀는 대신에 남편을 잃었다. 여기서 그녀들의 자식은 곡식의 낱알을 나타낸다. 이미 여러 번 언급 되었듯이 그러한 곡식의 낱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풍요의 여신과 연관된 신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자식 또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흘리는 그녀의 눈물이다. 이 눈물은 비가 되어 하늘에서 내리고, 그녀의 슬픔에 감복하여 최고의 신들이 잃어버린 그녀의 자식을 되찾아 주듯이 눈물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죽은 씨앗을 새롭게 되살아나게 만든다. 현대에도 그러한 해석은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1953년 시실리의 한 성당에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적적인 현상으로 많은 숭배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불길한 징조가 아닌지 내심 불안해했다.  결국 시라쿠사의 대주교는 “눈물은 견책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모여든 군중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마리아가 울었다! ... 울음은 풍부함이다. 세상에 마른 눈물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온 국토에 물을 대 주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작물과 씨앗과 과일을 온통 풍요롭게 해 주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 영적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눈물을 흘리는 여인은 언제나 진실한 의미에서 어머니가 된다.” 이 대주교의 서한에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자신의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던 초기의 대지이 여신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아 볼 수 있다. 

 

1928년 이태리 5센티시미

 

페르세포네  (1928년 이태리 5센티시미)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중근동의 고대 주화는 물론 근대 서구의 주화에서도 밀 이삭이 단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쉽게 생각하면 단순히 싱략 증진을 희망하는 바람이고, 좀 더 신화적으로 생각한다면 대지와 오곡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나타낸다. 때문에 어떤 여신이 밀 이삭을 손에 들고 있다면 대개 페르세포네 자신이거나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주화가 이탈리아 주화니 만큼 이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하자면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가 되겠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 또는 편의상 그리스식 이름으로 언급하기로 한다-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모두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로 기록된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는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어느날 명계의 신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를 명계로 납치해간다.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데메테르는 슬픔에 잠겨 제우스에게 간청을 하지만 형 하데스의 결혼을 바라던 제우스는 짐짓 모른척을 해버린다. 하지만 데메테르의 슬픔이 계속 되자 대지는 병들고 식물들은 시들어 갔다.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게 된 제우스는 급기야 페르세포네가 명계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조건으로 페르세포네의 귀환을 허락한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데메테르가 도착하기 전에 석류 한 알을 먹게 되고 결국 다시는 명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데메테르는 다시 슬픔에 잠기고 대지에는 재앙이 닥친다. 이에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제안을 하는데, 1년의 반은 그녀를 어머니인 데메테르의 곁에 두게 하고 나머지 반은 명계에서 지내도록 한다. 때문에 페르세포네가 명계로 돌아가고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기는 동안은 서서히 생명력이 시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럼 왜 밀 이삭이 페르세포네를 상징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이집트의 신화에서 밀 이삭이 상징하는 것은 오시리스였다. 그의 특징은 갈갈이 찢겨서 죽음을 당했다가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에 의해 부활하는 것이다. 이것은 페르세포네에게도 해당된다. 그녀 역시 하데스에 의해 죽음의 세계인 명계로 끌려 가고 어머니이자 자매인 (경우에 따라 자매로도 나타난다) 데메테르에 의해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페르세포네와 관련된 또 다른 신화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페르세포네와 아도니스, 아프로디테에서 똑 같이 반복된다. 다면 여기에서 페르세포네는 아도니스를 죽음의 세계에 잡아두려는 명계의 여왕으로 나타난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죽음과 부활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지의 많은 식물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경험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 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식물은 역시 그들의 식량원으로서 '생명' 그 자체이기도 했던 밀의 죽음과 부활이다. 

 

1909년 이탈리아 20센시티미

 

데메테르(케레스), 페르세포네 (1909년 이탈리아 20센시티미)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두번 째 사진에서는 여신이 밀 이삭을 들고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경우 대개 데메테르이거나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첫번 째 사진의 경우 역시 한 손에 횃불을 들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여신은 데메테르이거나 페르세포네이다. 대지의 풍요나 곡식과 연관된 여신들에게 왜 횃불이 들려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횃불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데메테르의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그녀는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메던 중 고대 그리스의 도시 엘레우시스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고, 한 여인에게서 환대를 받게 된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데메테르는 자신을 환대해준 여인의 아들에게 영원한 삶을 선사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여신은 죽게 마련인 육제에게서 죽음의 요소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 이 아들을 밤 사이 불에서 굽기 시작했다. 육체를 부패시키는 습기를 공기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빵 가마에서 아들의 육체는 가벼워지면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아들이 불꽃 속에 있는 광경을 본 어머니가 경악하자 데메테르 여신은 작업을 중단하는 수 밖에 없었다.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데메테르 여신은 다른 아들 (트리프톨레모스)에게 최초의 밀알을 선물해 주고 이것을 심어서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이 일화를 보면 데메테르가 자신을 환대한 여인의 아들에게 영원한 삶을 주려던 방법이 빵을 구울 때의 과정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실패하자 영원한 삶을 대신하여 다른 아들에게 준 선물 역시 밀알이었다. 결국 인간은 불로써 불멸성을 얻을 기회는 놓쳤지만 밀알을 선물 받으므로서 또 다른 불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의 손에도 영원한 생명의 횃불이 들려 있곤하는데, 밀알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그녀가 일년의 반 또는 1/3을 명계에서 보내게 되므로 지상에는 필연적으로 겨울이 오고 생명이 사그러지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련의 시기가 지나면 반드시 그녀는 그 생명의 횃불을 들고 지상으로 돌아오고 봄과 생명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첫번 째 사진의 도상을 본다면 마치 페르세포네가 생명의 횃불을 들고, 지상에서 명계로 붙들려 가거나 또는 그 반대로 명계에서 지상으로 되돌아 오는 듯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화에서는 후자의 의미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렇듯 밀알은 영원히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정기적인 수확 시기의 도래, 삶과 죽음의 필연적인 교차 등을 상징한다. 여기서 밀알은 부활의 약속이다. 데메테르 여신을 기리던 엘레우시스의 신비의식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의 의식이 끝 난 후에 눈이 부실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나타나는데, 이는 불운하게도 중단되고 말았던 불멸화 과정이 마침내 완성된 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 듯 모든 신화에서 씨앗은 항상 불멸성을 상징한다. *오늘날 곡식을 의미하는 시리얼 (cereals)라는 단어는 데메테르 여신의 또 다른 이름인 케레스 (ceres)에서 파생되었다. 

 

 

<크레타 대지모신>

 

1943년 프랑스 50상팀

 

크레타 대지모신 (1943년 프랑스 50상팀)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독일의 점령 시기던 1943년에 발행된 주화이다. 그다지 귀한 주화는 아니지만 도끼 자루에 새겨진 별이 뚜렷한 주화는 드물었던 것 같다. '라브리스 (labrise/labrys)'라고  불리는 양날도끼 문양으로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이 유명한데,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한 아서 에번스는 궁전의 벽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그려진 많은 '양날도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때문에 미궁을 의미하는 '라비린토스 (Labyrinthos)'가 양날 도끼를 의미하는 '라브리스 (Labrys)'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크노소스 궁전을 발견한 에번스가 이 견해를 지지하여 이후로 수십년동안 통용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증거들에 의하여 힘을 잃고 있다. 대신 양날도끼 라브리스가 사실은 채석장의 돌을 깨던 도구였으며, 돌로 만든 건축물을 '라비린토스'라고 부른다는 견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라비린토스'는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미궁'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라브리스 기호가 엄연히 여신 숭배의 기호라는 것이다. 그 기원이 하지와 동지의 두 일몰점과 일출점 및 북쪽과 남쪽의 두 방위를 함께 표시한 육등분에서 유래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그와 좀 다른 견해로는 '라브리스'의 두개의 도끼 날이 나비의 양날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나비를 여신과 연관짓는 것은 나비가 애벌레와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 거듭난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이것은 죽음 뒤의 인간 영혼의 소생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한편으로 도끼의 두개의 날은 그 자체가 하ご?죽음을, 하나는 생명의 소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양날도끼가 나타나는 미케네의 아름다운 인장 반지에서는 날의 한쪽은 희생을 가리키고, 다른 한편은 희생을 통해서 얻은 은혜의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상징의 위로는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는 달과 영원한 생명을 나타내는 태양의 상징도 함께 나타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궁을 나타내는 '라비린토스' 역시 죽음과 재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로와 미궁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로의 경우는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길을 잃기 쉽지만 미궁의 경우는 하나의 길이 바깥에서 시작하여 진자의 운동과 같이 방향을 좌우로 바꾸며 점차 안으로 들어가 중심에 도달하게 되고, 다시 반대의 방향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이러한 구조로 인해 우주의 자궁 미궁의 경험은 곧 죽음과 소생의 의례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크노소스의 궁전에서 유명한 신화 속 미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해졌다. 그곳에서 황소 뛰어넘기 의례와 황소 죽이기 의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거친 황소를 뛰어넘고 죽이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 신화속에서 아테네에서 끌려온 소년 소녀들은 이 의례에서 희생되었으리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추측이다. 그리고 양날 도끼는 바로 이 의례에서 황소를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죽음과 소생의 두가지 의미를 가지는 양날도끼는 결국 이지러지는 달-황소를 죽임으로서 어둠을 지나 초승달로 소생하도록 재촉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아르테미스, 디아나  (1951년 바티칸 2리라 주화)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홀을 오른 손에 든 한 여인의 뒤로 한 마리의 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우리는 영국의 브리지트 여신의 옆에 나타난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 이러한 여신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디아나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생물의 어머니 키벨레도 종종 사자와 등장하기도 하며,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수메르 신화의 이쉬타르, 이난나에게 까지 이른다.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태양의 신 우투의 여동생 이난나는 오빠의 권유로 두무지라는 목동 청년과 결혼을 한다. 결혼 초기에 이난나는 사랑의 달콤함을 느끼지만 얼마 가지 않아 두무지는 아내에게 소홀해지고 누이와 색정적인 놀이에 몰두한다. 두무지의 양 우리에서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이난나는 홧김에 지하세계로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뒤 늦게 이를 후회하여 지상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지하세계의 여신 에레쉬키갈라에게 붙잡히고 신들의 저주를 받아 고깃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다행히 이난나의 충실한 시종은 그녀가 지하세계에서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이난나의 시아버지 엔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엔키는 이난나를 구하기 위해 두 명의 곡 꾼에게 생명초와 생명수를 들려 저승으로 보낸다. 두 곡 꾼은 에레쉬키갈라의 고통을 해결해 주고 그 보답으로 고깃덩이로 변한 이난나를 돌려받아 생명초와 생명수의 도움으로 그녀를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신들은 이난나가 한번 저승에 온 이상 온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며 원한다면 그녀를 대신해 누군가를 희생하도록 요구한다. 결국 이난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대신해 다른 이를 붙잡아 갈 저승사자들이 따르게 된다. 처음으로 저승사자들은 그녀의 시종을 붙잡아 가려 하지만 자신을 구해준 보답으로 이난나는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반대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이난나의 남편 두무지가 사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철없는 남편 두무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이난나는 저승사자들에게 자신을 대신해 두무지를 데려가도록 한다. 공포에 질린 두무지는 이난나의 오빠인 우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여 도마뱀의 손과 발을 얻어 저승사자들로부터 달아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저승사자를 피해 누이의 양조장에 숨어 있던 두무지는 그를 발견한 팔의 밀고에 의해 결국 저승사자에게 잡혀 가게 된다. 이 같은 신화에 의해 이난나의 도상에는 종종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저승사자가 함께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이 후대에 그리핀이나 사자로 변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신화는 그 안에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승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이난나의 이야기는 저녁에 서쪽하늘로 사라졌던 금성이 다음날 새벽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금성은 이난나의 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무지는 목동이며, 그녀의 누이는 포도주의 여신이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소개하면 두무지가 저승에 잡혀 가고 누이 포도주의 여신 게쉬티안나가 이를 몹시 슬퍼하자 이난나는 두무지와 게쉬티안나를 각각 반년씩 저승에 머물도록 한다.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여름이 되면 들판에서 양떼와 염소 떼를 치는 양치기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것은 두무지가 반년 동안 저승에 붙잡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비가 내리고 양치기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이 되는 반면, 여름 동안 수확하여 통에 담긴 포도주는 겨울 동안에는 땅 속에 묻혀 봄을 기다리게 되며 이것은 그의 누이 게쉬티안나가 저승에 붙잡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

 

1951년 바티칸 2리라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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