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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속의 여신 3 (바바, 이시스, 미네르바, 비너스 등)

여성신,신화/그리스,로마

by baesungsoo 2008. 7. 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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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삼자창

 

바바 여신 (네팔 삼자창)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첫번째 사진의 위쪽으로 세가지 문양이 나타난다. 첫번째는 달이라고 짐작이 가는 문양이 그 대칭 위치에 역시 태양으로 짐작이 가는 문양이 새겨져 있고, 둘 사이에는 삼지창과 나비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달과 태양으로 보이는 기호는 분명 네팔 국기에도 나타나는 기호이다. 하지만 삼지창은 그렇지 않다. 그럼 삼지창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삼지창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주화에서 부터 영국 1페니주화까지 살펴 보았다. 물론 여기에서도 그와 같은 의미라고는 장담 못하겠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 하는 것이 삼지창 아래 함께 나타나는 나비 모양의 문양이다. 우리에게 잘알려진 이와 같은 문양은 고대 크레타 문명의 여사제들의 상징이던 '라블라스'라는 양날 도끼 문양이 있다. 하지만 위 주화속 나비 문양은 그 보다 더 원형에 가깝다. 원래 라블라스 문양이나 이와 같은 나비문양 모두 같은 신화적 기원을 가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슬라브에서는 baba라는 여신이 있는데 이는 bаboсkа (나비)와 관련된다고 한다. 어쨌든 라블라스와 나비기호 모두 여신의 상징인 육광성 기호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유태인들의 상징인 다비드의 별이나 마리아의 별이라고 불리는 육광성은 북극성을 기준으로 하여 남과 북의 축을 정했을 때 하지날 일출점과 일몰점을, 그리고 동지날 일출점과 일몰점을 선으로 그었을 때 나타나는 여섯개의 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즉, 그 꼭지점을 이었을 때 나타나는 육각형이나 두개의 겹쳐진 삼각형). 즉, 도끼의 날이나 나비의 날개에 해당되는 양쪽의 공간은 동쪽 일출점의 최대범위와 서쪽 일몰점의 최대범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육광성 기호는 +자 기호와는 달리 철저히 하늘과 결부된 여섯 방위의 기호임을 알 수 있고, 이는 곧 라블라스나, 나비기호 또는 육광성 기호가 큰여신의 상징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앞서 삼지창 기호 역시 하늘 여신을 나타내는 새발 기호나 삼위 일체 기호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살펴볼 때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시스 여신> 

 

이집트 유니세프 주화

 

이시스 여신  (이집트 유니세프 주화)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이번엔 이야기가 이집트로 옮겨 간다. 첫번째 사진에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있는 여인의 도상이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 여인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은 어떻게 보면 풍요의 여신 이시스라고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확증할만한 몇가지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서 이시스 여신은 그 머리 위에 난 두개의 뿔 사이에 둥근 원반이 있거나 옥좌를 상징하는 의자 문양이 새겨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화의 도상에서는 이 두가지 모두 빠져 있다. 더구나 앉아 있는 여인의 앞으로 국제아동기구인 유니세프의 엠블럼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히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를 이시스로 볼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수유를 하고 있는 도상은 그것이 곧 이집트 신화 속의 이시스는 아닐지라도 생명을 키우는 여신으로서의 넓은 의미의 이시스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와 같은 자연을 통제하고, 계절을 지배하며, 비옥한 땅을 만들어 백성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능력을 지녔다. 이시스 (Isis)라는 이름은 '자리'(seat)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대부분 지배력과 사랑의 힘에 대한 권위를 나타내는 계단 모양의 왕관을 머리에 쓰는데, 가끔은 암소의 뿔과 원반으로 장식된 머리 장식을 썼다. 암소는 젖을 상징하고, 달은 보이지 않는 정신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그녀는 머리장식을 통해 물질을 양육하고 변형하는 능력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달의 차고 기움은 시간을 알려주고 그것은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며, 이집트는 이러한 범람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이시스의 숭배에 한 몫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대지에 생명을 주는 이시스 여신의 수유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집트의 조각이나 청동상 들 중에는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모티브가 많이 나타난다. 그녀의 아들 호루스는 훗날 성장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세트를 물리치고 이집트의 왕이 된다. 이러한 신화로 인해 역대 이집트의 왕들은 누구나 자신들을 '살아 있는 호루스'라고 칭하였다. 결국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의 도상은 곧 이집트 그 자체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라는 의미도 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시스의 더 위대한 점은 이집트 왕들의 신화적 어머니가 되었다는데 제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기독교 시대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숭배를 받고 있다.  바로 아기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상이 그것이다.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은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까지 숭배의 대상이었던 이시스 여신은 기독교 시대에 이르러 공식적으로는 이교로서 박해의 대상이 되었지만 아기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여신의 도상은 그대로 아기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에게 흡수되어 그 생명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아기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중에 그 안에서 이시스 여신을 떠올리는 사람은 이제 없겠지만 도상으로서 그녀의 모습은 우리 곁에서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미네르바와 니케 여신>

 

1924년 이탈리아 1리라

 

미네르바와 니케 (1924년 이탈리아 1리라)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첫번째 사진에 나타난 두명의 여신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승리의 여신 니케로 짐작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와 전쟁의 여신으로 나타나는 아테나와 동격인 미네르바는 흔히 무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여기서는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그녀를 미네르바라고 짐작하는데는 그녀의 왼손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여신이 승리의 여신 니케이기 때문이다. 고대 주화에서도 니케는 사진에서와 같이 제우스나 아테나의 손 위에 올려져 있곤 하는데, 이는 그들에게 항상 승리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 대신에 월계관을 들고 있지만 월계관 역시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대신 무장을 하지 않은 미네르바의 오른 손에는 올리브 가지가 들려 있다. 아네타의 성목이 올리브인 까닭도 있겠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가지를 손에 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별도로 평화의 염원을 읽을 수도 있다. 고대 로마에서 미네르바는 최고신 유피테르와 그의 아내 유노에 다음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던 수호여신이었다. 때문에 로마 건국 당시부터 로마인과 그 주민 공동체인 국가 로마를 지켜준다는 이들을 최고제사장이 경배하였고, 제정에 들어선 뒤 부터는 로마 황제의 임무에 '최고제사장'의 직무가 함께 겸임되었다. 카이사르에서 시작된 이러한 전통은 기독교도인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최고제사장'에 취임하기를 거부할 때까지 계속된 전통이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공화정 시대부터 원로원 회의장 정면에 안치되어 있었던 '승리의 여신상' 철거를 명령한 황제이기도 하다. 이 여신상은 둥글고 커다란 지구 위에 날개를 좌우로 펼친 여신이 왼손에는 홀을 들고 오른손에는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원로원 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로마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 여신상 앞에 향이 피워지고, 의원들은 거기에 예배를 드린 뒤에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어도 500년 동안 계속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다. 명령을 내린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니케이 여신은 한동안 원로원에서의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곧이어 내려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인해 그 지위도 오래가지 못한다. 당시 원로원 의원이면서 로마 수도장관을 지냈던 '심마쿠스'라는 인물은 로마 원로원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니케의 여신을 지키기 위해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황제는 기독교도인 주교의 손을 들어 주고 니케의 여신은 철거되고 말았다. 이 상징적 사건과 함께 로마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기독교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고대 비너스 여신>

 

1993년 슬로바키아 비너스

 

고대 비너스 (1993년 슬로바키아 비너스)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많은 경매 사이트에서 이 주화를 소개할 때 마네킨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마네킨이 아닌 고대 비너스 조각상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보다 더 먼 고대, 구석기 인들이 만들었던 풍요의 여신을 기리던 비너스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브라질 대지모신>

 

1928년 브라질 1000레이

 

 대지모신 (1928년 브라질 1000레이)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위의 사진에서는  여신이 아예 자신의 손에 들린 코르투코피아에서 나오는 식물과 과일 등을 대지에 쏟아 붓고 있다. 이것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대지에 풍요와 생명력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여신의 앞으로 보이는 다섯개의 별은 남십자성으로 짐작 된다. 원래는 십자 모양을 이루는 네개의 별만 남십자성으로 부르며, 이는 북위 30도 이남에서만 볼 수 있는 별로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우리의 북두칠성과 같은 별이다. 남십자성은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네개의 별 중 세로 축을 형성하는 두 별의 아래 방향이 가리키는 곳이 남극이기에 옛 항해사들에게는 중요한 지표가 되던 별이다. 때문인지 뉴질랜드의 국기를 비롯하여 다른 남반구 국가의 주화에서 간혹 나타나고 있다.

 

<여신과 코르누코피아>

 

1950년 벨기에 5프랑

 

여신과 코르누코피아 (1950년 벨기에 5프랑)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여신의 얼굴 뒤로 과일과 식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아홉개의 이파리가 달린 참나무 가지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여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여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여신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전형적인 유럽의 여신이 왜 폴리네시아 주화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제목에서 나타났듯이 폴리네시아가 프랑스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권국가가 식민지에 여신의 형상을 보급하는 것은 양지역간의 동질감을 만들기 위해 오래전 부터 있어오던 관습이라고 한다. 영국과 같이 국왕이 존재한다면 왕의 얼굴을 새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겠지만 혁명으로 왕을 축출한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러한 방법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혁명 직후 왕정시절 지배계급의 한 축을 이루던 카톨릭을 탄압한 로베스 피에르는 민중에게 카톨릭을 대체할 종교가 필요한을 느끼고 이와 같은 고대 여신 숭배 의식을 널리 보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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